바르셀로나. 자정. 바다가 보이는 골목. 식당과 바 사이로 난 좁은 길에는 향수와 음식 냄새로도 가려지지 않는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황홀경에 젖은 탄식. 사내의 등을 끌어안는 손. 다듬은 손톱에는 붉은 네일 폴리쉬가 칠해져 있다. 왼쪽 얼굴에 커다란 흉터를 단 잘생긴 남자는 여자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 눈을 내리뜨고 있었다. 마치 열정적으로 애무에 몰두하듯이.
송곳니 사냥꾼들이 바르셀로나의 연쇄 실종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것은 얼마 후의 일이었다.
크라우스 폰 라인헤르츠는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항공기의 비즈니스석에 몸을 묻은 채 패드로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라인헤르츠 가의 젊은 도련님에게 비즈니스석이 주어진 이유는 그의 대단한 혈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송곳니 사냥꾼들의 세계에서는 살아있는 전설이나 마찬가지였다.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모자란 무력. 인세에 강림한 성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품. 그는 존경받기에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코노미석에 앉는다면 좌우의 승객이 짓눌리게 된다는 것도 이유에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그의 옆 좌석에 앉아 기내식을 먹고 있던 동료 매니가 투덜거렸다.
“잡다한 연쇄 살인일 것 같은데. 내 감이 그래. 한 달 반 동안 스무 명이 실종됐다는 건 물론 큰일이지만…. 내가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알지, 크라우스?”
크라우스는 패드에서 눈을 들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에반스. 하지만 실종자의 수가 적지 않음에도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건 주목할 만한 일이잖은가? 단순한 연쇄 살인이라도 우리가 손을 댄다면 범인을 쉽게 잡을 수 있겠지. 그러면 희생이 줄어들 것이고.”
“아, 크라우스. 자넨 정말 성자야.”
매니 에반스가 탄식한다. 크라우스의 인품에 대한 찬탄과 지나친 고지식함에 대한 놀림이 반씩 담겨 있는 탄성이었다. 크라우스는 부끄럽다며 겸양해 매니를 다시 한 번 질리게 만들었다.
기내식을 해치운 송곳니 사냥꾼들은 제대로 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번 작전의 참모 역할을 맡은 매니 에반스가 입을 열었다.
“자, 다들 자료는 미리 확인했겠지? 한 달 반 동안 스무 명이 실종됐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상부에서는 최악의 경우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인간들 사이의 연쇄 살인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큰 건인 건 마찬가지지. 크라우스 말마따나 우리가 개입해 빨리 끝난다면 다행일 것이다.”
게일이 한 손을 들어올렸다.
“실종자가 스물이 넘는데 공통분모가 전혀 없잖아.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도 제각각이고. 어디서부터 시작할 생각이야?”
그의 말대로였다. 바르셀로나의 지도 위에 붉은 점으로 표시된 실종 장소는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마치 조약돌 따위를 흩뿌려 둔 것 같이 보였다. 매니가 생각만 해도 피로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일단은 탐문부터. 경찰 측 자료를 빼 왔으니 확인하도록 해. 발로 뛰어서 찾는 수밖에는 없겠다.”
크라우스를 제외한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였다.
바르셀로나의 칠월은 햇빛이 강하나 건조해 활동하기에 나쁘지 않다. 비행기에서 내린 송곳니 사냥꾼들은 호텔에 짐을 풀기가 무섭게 거리로 나왔다. 전설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손길이 닿은 도시의 조경과 마침내 완공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정경이 감동적으로 아름다웠으나, 그것을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경찰 내부의 조직원과 접선해 정보를 공유받고, 도시의 그림자에 자생하는 불법적인 조직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바르셀로나 출신의 송곳니 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인간 아닌 것들의 동향을 수집한다. 게일의 말을 빌리자면 X빠지게 뛰어다녀야 했으나, 첫날은 완전히 꽝이었다.
이른 낮 시간에 탐문을 시작했는데 벌써 자정이 가까웠다. 인적이 드문 대로를 느리게 걸으며, 크라우스는 안경을 벗고 피로한 낯을 쓸어내렸다. 낯선 도시와 강한 햇살, 그리고 필요 이상의 책임감은 천하의 크라우스도 지치게 만들었다. 이만 호텔로 돌아갈까 하던 차에 누군가가 그를 불러세웠다.
“여어.”
카페테리아의 테라스석에 앉은, 짙은 감색의 셔츠를 걷어 입은 남자였다. 검은 고수머리. 어둠 속에서는 거의 암갈색으로 보이는 눈동자. 왼뺨의 큰 흉터와 붉은 문신. 무엇보다도, 퇴폐적인 인상을 풍기는 잘생긴 얼굴. 어디에서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미남.
“오늘만 해도 당신이 여길 지나가는 걸 세 번은 봤거든. 그래서 불러 본 거야.”
자신이 오늘만 이 카페테리아 앞을 세 번이나 지나갔다고? 돌이켜보면 그랬던 것 같다. 이곳은 사람이 우글거리는 카탈루냐 광장 근처였다. 낮에는 혼이 빠지도록 붐볐던 곳이 밤이 되자 다른 장소인 것마냥 조용했다. 신원 미상의 미남은 웃는 얼굴로 말을 잇는다.
“나는 스티븐 스타페이즈. 자네는?”
“크라우스 폰 라인헤르츠라고 하네.”
“독일계인가? 그나저나 굉장한 이름이로군.”
한두 번 들어 본 소리가 아니었지만 크라우스는 머쓱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커피가 필요해 보이는 얼굴인데, 이리 와서 앉겠어? 이 시간까지 영업하는 카페테리아는 인근에 여기뿐이거든.”
크라우스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 또한 탐문의 일부라 생각하고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자신을 스티븐이라 소개한 남자는 멋대로 코르타도 한 잔을 주문한다.
“에스파냐에 왔다면 코르타도를 마셔야 해. 마셔 봤나?”
크라우스는 다문 입술로 고개를 젓고, 서버가 내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셔 보았다.
“맛있군.”
집사 길베르트의 커피에 길들여진 혀로도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커피였다. 스티븐은 자신 몫의, 반쯤 마신 도자기 잔을 들어올리며 미소짓는다. 왼뺨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입꼬리와 함께 움직였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에는 어쩐 일? 관광은 아니지? 형사처럼 굴고 있던데.”
크라우스가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것을 보고 스티븐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봐, 크라우스. 자네처럼 눈에 띄는 사람이 종일 도시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캐묻고 다니는데, 나처럼 할 일 없는 사람이 눈여겨보지 않을 리 없잖아!”
사납다 못해 무섭게 생긴 거구의 사내가 어쩔 줄 몰라하는 광경은 과연 장관이었다. 스티븐은 한참을 웃다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친근한 태도로 크라우스의 어깨를 두드린다.
“곤란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내 멋대로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FBI라고 생각하고 있지 뭐.”
크라우스는 낯빛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해 주어 고맙네.”
그 신사적이고도 정중한 인사에 스티븐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으나, 크라우스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들은 달이 한 뼘이나 지나도록 카페테리아의 테라스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티븐 스타페이즈는 짓궂은 면이 있기는 했으나 놀라울 정도로 교양이 풍부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체스를 둘 줄 알고 즐긴다는 말이 크라우스를 기쁘게 했다. 낯선 이국에서 친구가 될 만한 이를 만난 것 같아 들뜨기까지 했다.
잔에 남은 커피가 말라붙을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난 후, 동쪽 하늘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올 무렵이 되자 스티븐이 몸을 일으켰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자네를 너무 오래 잡아둔 것 같아서 미안한데, 크라우스.”
“무슨 말인가. 자네와의 대화는 정말로 즐거웠네, 스티븐.”
“하하! 이거 기쁜걸. 자네만 괜찮다면 내일 자정 무렵에 여기서 만날까? 내가 체스판을 들고 오지.”
“음, 좋네. 내일 자정에.”
스티븐은 산뜻한 태도로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그가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배웅하던 크라우스는, 뒤늦게 무언가에 홀린 기분을 느끼며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
자정 무렵, 카탈루냐 광장을 바라보는 카페테리아의 테라스석. 크라우스와 스티븐의 만남은 닷새가 넘도록 이어졌다. 그들은 우유 거품이 올라간 커피를 마시며 체스를 두고 수많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티븐은 대단히 눈치가 빠른 사내인지라, 크라우스가 연쇄 실종 사건에 대해 탐문한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 함께 걱정해 주었다. 크라우스는 스티븐 스타페이즈라는 남자에게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그는 좋은 친구였다.
오늘은 송곳니 사냥꾼들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지 엿새째 되는 날이었다. 시간이 자정에 가까웠으니 이제 곧 이레가 될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여러 주제를 거쳐 다시 연쇄 실종 사건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실종자들의 가족들로부터 증언은 다 받아 놓은 건가? 그들이 당시에 어떤 상태였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야.”
“그렇다네. 실종자 중 두 명을 제하고는 전부 가족과 친지들의 인터뷰를 받아내었어. 개인차는 있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이는 없었다네. 개중 몇은 새로 데이트를 시작했을 정도로 괜찮은 상황이었고.”
“하하, 자네 정말 형사 같아.”
스티븐이 즐거운 낯으로 미소지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의 불빛과 카페테리아의 실내로부터 쏟아져나오는 주홍 조명 아래의 스티븐은 매력적이었다. 크라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멈추었다가, 무언가 대답하려고 입을 여는데.
“크라우스!”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아채며 뒤로 끌어당겼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매니였다.
“매니, 무슨…?”
“너 미쳤어?!”
작은 손거울을 쥔 매니는 제대로 된 대답도 없이 막무가내로 크라우스를 잡아당겨 자리를 뜨려 했다. 그 서슬에 테이블이 흔들리며 커피가 쏟아진다. 우유 거품이 흩어지고 테이블 위로 커피가 고여 조명을 반사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게 미소짓고 있는 스티븐의 얼굴은….
수면에 비치지 않았다. 크라우스는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을 차린다.
“아. 유감이로군.”
스티븐은 극적인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의자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그는 진심으로 상심한 사람처럼 미간을 찌푸린 채 커피가 묻은 소매를 털어낸다.
크라우스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나 반사적으로 전투 태세를 취했다. 그의 등 뒤에 선 매니가 권총으로 스티븐을 겨누고, 동시에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정말로 유감이야. 나는 자네와 꽤 즐거웠거든, 크라우스.”
크라우스를 부르는 스티븐의 목소리는 여전히 친근했다. 그것이 상황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스티븐, 자네….”
크라우스는 오른손으로 품을 뒤져 작은 거울을 꺼낸다. 그에게는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실은 변함이 없어, 여전히 거울 속 스티븐의 자리는 비어 있다.
크라우스는 목이 졸리는 듯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어째서…?”
“어째서냐고.”
스티븐이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넣은 채, 짐짓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지는 매끄러운 미소.
“재미있잖아.”
발밑이 선득하다고 느껴진 순간, 크라우스는 매니를 당겨 안으며 몸을 굴렸다.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얼음 창이 솟아나 있었다. 카페테리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가운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크라우스는 현실감을 잃은 채 주먹을 휘둘렀다. 극도로 단련된 육신은 반쯤 넋이 나간 상황에서도 전투를 위해 기능했다. 어느새 모여든 동료들이 지원사격을 퍼붓고 있었다. 총알에 스친 스티븐의 어깨가 순식간에 수복되는 것을 확인하자 더욱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스티븐 스타페이즈는 블러드 브리드였다. 그렇다면 왜 자신에게 접근한 것일까? 송곳니 사냥꾼을 농락하기 위해서? 그가 보인 호의와 우정은 모두 거짓이었던 것인가?
“끔찍한 것을 보는 얼굴이로군, 크라우스. 궁금한 것이 많겠지? 가엾게도.”
스티븐의 부드러운 미소와 매력적인 말씨는 여전했다. 매끈한 구둣발로 얼음 창을 쏘아대면서도, 크라우스와 체스를 둘 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를 잡아 봐, 크라우스.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러면 전부 알 수 있을 걸세.”
웃음기 어린 목소리는 크라우스의 목눌함을 놀릴 때와 꼭 같은데도….
크라우스는 야차 같은 표정을 한 채 공격을 퍼부었다. 인간의 총탄 따위는 몸으로 받아내던 스티븐이었으나, 멸옥의 피를 가진 송곳니 사냥꾼의 공세는 무시할 수 없었다. 수십 합의 공방이 오가고, 마침내 크라우스의 혈십자가 스티븐의 몸을 꿰뚫는 것에 성공했다. 스티븐의 얼굴이 어쩔 수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순간, 크라우스는 저도 모르게 슬픔으로 낯을 찌푸리고 말았다.
시선이 닿는다.
스티븐은 짓궂은 미소를 띤 채 속삭였다.
“자네 지금 슬퍼하고 있군?”
크라우스의 치부를 들추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십자가를 쥔 주먹이 잠시 멈춘 순간, 스티븐은 몸을 빼내어 박쥐 떼로 흩어진다. 붙잡을 새도 없이 도시의 어둠 속으로 빨려들듯 사라진다.
만신창이가 된 채 우두커니 선 크라우스의 주변으로 동료들이 몰려들었다. 이봐, 크라우스.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혼란스러운 질문들 속에서 그는 이를 악문 채 하늘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