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 간 린돈의 서쪽 바닷가는 황량하다 해도 좋을 만큼 고즈넉하였다. 인적 없는 해안선을 따라 푸른 바닷물이 흰 포말을 일으키고, 저만치 창백한 회청색의 하늘이 수평선에 닿아 있었다. 핏기 없는 창공을 가로지르는 흰 바닷새가 여럿…. 쓸쓸한 광경이었다.
이브렌길은 사색하며 바닷가를 걸었다. 어차피 발이 젖을 터이니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이었고, 풀어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나부끼었다. 그의 등 뒤로 발자국이 한없이 늘어져 있었다. 흐린 오후였다. 그는 종일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병증 같은 그리움과 시간이 남긴 상처에서 비롯된 고통은 요정들의 고질병 같은 것이었다. 서녘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들도 그곳을 애타게 그리워했다. 하물며 시간에서 비롯된 상흔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러나 이브렌길은 부러 발치를 보며 걸었다. 자꾸만 서편으로 향하려는 눈길을 끌어다 놓았다.
그때, 저만치 떨어진 작은 잡목림의 나무를 헤치고 엘론드가 나타났다. 그 또한 젖은 모래에 이르러서는 신을 벗어 손에 쥐고 걸었다. 이브렌길이 미소를 띠며 엘론드를 맞이했다.
“엘론드. 여긴 어쩐 일이냐.”
“궁의 창문으로 이브렌길 형님이 보여서요. 늦은 오전에는 남서쪽 창문으로 보이더니 좀전에는 북서쪽 창으로요.”
“내가 종일 걷기는 했지.”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는 아니지 않나요? 조금 더 맑았으면 서쪽이 더 잘 보이련마는.”
“그렇겠지….”
이브렌길의 열없는 대답에 엘론드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잠시 제 형제를 응시하던 시선이 바다로 향한다.
“조금 더 걸을까요.”
“그래.”
이제 등 뒤에 남는 발자국이 두 쌍이 되었다. 그들은 느리게 걸었다. 대화가 오가지 않았으나 침묵은 편안하였다. 엘론드는 이브렌길이 그리움을 숨기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것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저만치에 한 줌의 흰 것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 보니, 흰 바닷새가 죽어 누워 있는 것이었다. 상처도 고통의 흔적도 없었다. 하늘을 날다가 지쳐 죽은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두 요정은 작고 흰 죽음 앞에 서서 그것을 굽어보았다.
죽음은 언제나 요정들에게 기묘한 감상을 주었다. 그들은 알고자 해도 영영 알 수 없는, 유일하다 해도 좋을 미지. 요정 중 가장 지혜로운 현자도 죽음을 설명하지 못했으며 가장 위대한 시인도 죽음을 노래로 풀지 못했다. 그들이 겪을 수 없는 것인 까닭으로 그러했다.
정해지지 않은 곳으로 떠나간다는 것은,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니 엘로스는 얼마나 용맹한 아이인가요.”
엘론드가 두서없이 던진 말을, 이브렌길은 즉시 이해했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사실 저는 아직도 그 애의 선택을 완벽히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에레드 루인의 그 추위 속에서, 우리는 눈만 보아도 서로를 완벽히 읽어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린돈의 햇살 아래에서는 오히려 그 애의 속을 모르게 되덥니다. 엘로스는, 그 애는, 왜 인간의 길을 택한 것일까요.”
바람에 흔들리는 흰 깃털.
“왜 떠나가기로 한 것일까요.”
그 희고 작은 것은 아주 덧없게 보인다.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 곳으로.”
새를 내려다보는 엘론드의 옆얼굴은 아주 멀리로 떠나간 무언가를 바라보듯 아득하였다. 이브렌길은 말없이 몸을 굽혀 그 작은 사체를 손에 받쳐들었다.
“묻어 주자꾸나. 저편의 숲 입구에, 바다가 잘 보이고 별빛이 닿는 곳에.”
요정 청년이 수평선으로 시선을 던졌다. 회색 눈 안에 울적한 빛깔의 바다가 담기었다. 엘론드는 잠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 엘론드가 거쳐온 잡목림으로 향했다. 어린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며 뛰어놀기에 딱 좋은 작은 숲이었다. 이브렌길이 양 손으로 새의 몸뚱이를 들고 있는 동안 엘론드가 나무뿌리 근처의 땅을 팠다. 그들은 숲 외곽의 키 큰 나무를 골랐다. 과연 바다가 잘 보이고 별빛이 닿을 수 있는 나무였다.
장신의 놀도르 요정이 팠다고 하기에는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구멍 속에, 그보다 더 작은 새가 누웠다. 이름 모를 바닷새는 요정 청년들의 손바닥 반도 채 되지 않았다. 작고도 사소한 죽음. 향하는 곳을 알지 못하는 고별. 이브렌길과 엘론드는 새의 사체에 흙을 덮고 그것을 단단히 다져 주었다. 소꿉장난 같은 장례였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몸을 일으켜서 보니 새의 무덤은 작을뿐더러 벌건 흙이 드러나 볼품없었다. 그들은 요정인지라 장례 치르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올 것이었다.
둘은 바다로 가 손을 씻었다. 엘론드가 손을 씻을 때에는 이브렌길이 그의 신을 대신 들어 주었다. 오후 무렵이 되자 해가 조금 났다. 바다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찰싹거리며 다가왔다가 물러서는 파도 위로 보석 같은 햇살이 흩어지고, 물결을 따라 윤슬이 흘렀다. 엘론드는 옷자락이 젖는 줄도 모르고 그 광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손에 묻은 흙은 이미 씻긴 지 오래였음에도.
“누구 생각을 하니.”
“에레드 루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곳은 대개 추웠고 바다와 멀었으니까요. 에리아도르는 바다가 가까워서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에레드 루인 생각을.”
“예.”
이브렌길 또한 에레드 루인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다. 분명 해가 좋은 날이 있었음에도 검푸르른 빛깔과 화로의 열기로만 기억되는 나날들을. 그러나 그 척박함 속에는 분명 애정이 있었다. 그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안대를 매만져 보았다.
“마글로르 님은.”
엘론드는 스스로가 뱉은 말을 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숨을 들이킨다. 부지불식간에 터져나온 말임에 분명했다. 마글로르의 이름은, 그들에게는 쉬이 꺼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브렌길은 엘론드의 말을 받아 되뇌었다.
“그래. 마글로르 님은.”
엘론드는 여전히 바닷물에 손을 담근 채, 젖어 휘감기는 옷자락을 그대로 두고 뇌까린다.
“그분은…. 어디에 계실까요.”
“아는 이가 있을까.”
“없겠지요. 찾는다고 찾아 보아도 도저히 흔적이 보이지 않더군요.”
“그분을 찾고 있었니.”
“알아보기는 했었지요. 어디에 계실까, 무얼 하고 계실까, 서편 바다가 보이는 곳에 계실까. 그것이 궁금하고 염려가 되어 참을 수가 없덥니다.”
“그분이 의지를 가지고 행적을 숨긴다면 찾을 이가 없을 것이다.”
엘론드는 느리게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책 같은 것은 말아야겠지요.”
“아무렴.”
“닿을 곳도 없는 그리움에 앓는 일은 그만두어야겠지요.”
“엘론드.”
“오래 산 것도 아닌데 어찌 이토록 잃은 것들이 많을까요.”
그는 바닷물을 흠뻑 머금은 옷을 비틀어 짜며 여상스럽게 말했다. 정작 슬픈 낯이 된 것은 이브렌길이었다.
“바닷새처럼 떠나가는군요, 사람들은.”
젖은 모래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뭍으로 향하던 엘론드가 뒤를 돌아본다. 여전히, 회청색 하늘 위로 점점이 날아가는 흰 새들. 연민과 슬픔이 감도는 낯의 이브렌길.
“시대가 잔혹한 탓이다.”
틀린 말이 아니라 웃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엘론드는 소금기 어린 손을 털고 이브렌길이 들고 있던 제 신을 받아들었다.
“형님과 저는 앞으로도 바닷새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역할인가 봅니다.”
“둘이서 하면 한결 수월하겠지.”
그들은 서로의 말 속에 깃든 함의를 읽어내었다.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라는 물음에 그러마고 답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엘론드.”
“네, 형님.”
“조만간 엘로스를 만나러 가 볼까. 배를 마련해서, 선물을 잔뜩 싣고.”
“좋은 생각입니다.”
“군주께 승낙을 받아내는 것은 네가 해라. 아무래도 친동생이니 잘 먹히겠지.”
“제게 가장 큰 일을 떠넘기시는군요.”
“그래서 싫으냐.”
“아닙니다. 가서, 이브렌길 형님이 시켰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녀석이.”
옷자락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젊은이들이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바다를 등지고 린돈의 성내로 향하는 발자국이 두 쌍. 등 뒤로는 구름이 걷혀 화안한 햇살이 바다 위에서 까불며 춤을 추고, 투명하게 푸르러진 물결이 찬란하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길고 흰 구름은 새의 날개 같았다. 작고 흰, 이름 모를 바닷새. 서편으로 향해 날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