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에 대한 단상
딱복2025-11-09 23:42

어느 날 블라디미르 룸펜과 지이휘의 눈앞에 외계인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날은 이천이십구년 오월 십구일이었다. 하늘이 맑은 일요일 오후. 시간은 두 시 이십 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날짜와 시간, 요일과 날씨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둘의 집 거실 소파 위에 외계인이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이 그것을 외계인이라고 여기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그것이 한눈에 보아도 외계인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것처럼 커다랗고 새까만 안구와 초록색 피부, 인간과는 다른 왜소한 골격에 깡마른 팔다리. ‘외계인’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외계인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이휘였다. 느긋한 오전 시간을 보낸 그는 책장에서 책을 한 권 찾아 읽을 생각을 하며 거실로 나갔고, 소파 위에 앉아 있는 그것을 보게 된 것이다.

이휘는 침착한 사람이었기에 비명을 지른다거나 펄쩍 뛰어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못박힌 듯 멈춰 선 채로 생각을 시작했다. 이휘가 처음 떠올린 것은, 블라디미르가 짓궂은 장난을 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었다. 그러나 그 가설은 빠르게 폐기되었다. 소파 위에 정자세로 앉아 있는 그것이 너무나 생명체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미끄러운 광택이 도는 피부의 질감은 어쭙잖은 장난으로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두 번째 가설은 돈 많은 유튜버의 깜짝 카메라였다. 조회수에 미친 유튜버가 아무 가정집이나 골라 몰래 침입해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정교한 피규어 따위를 소파 위에 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두 번째 가설도 금세 폐기되었다. 그들의 집은 보안 업체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기에 문이나 큰 창문이 열리면 즉시 알람이 울리게 되어 있었다. 또한 거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면 블라디미르와 이휘가 모를 리 없었다.

세 번째 가설과 네 번째 가설도 떠올랐으나, 그것들도 마찬가지로 빠르게 폐기되고 말았다. 모든 가설들에 하나씩 말이 안 되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이휘는 의식적으로 동작을 절제하여 거실을 빠져나갔고, 작은 목소리로 블라디미르를 불러왔다.

“블라디 당신도 저게 보이나요?”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외계인’이 앉아 있는 소파에서 일 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외계인은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으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상식의 영역 안에서 생각하자면 저것은 정교한 모형이어야만 하는데, 이상하게도 살아 있는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블라디미르는 외계인에게 러시아어로 말을 걸어 보았다.

“Здравствуйте?”

외계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는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Hello?”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블라디미르의 눈짓에 이휘가 보통화로도 대화를 시도해 보았으나 여전히 그것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둘은 저도 모르게 어깨의 힘을 풀었다.

“진짜같이 생긴 모형 아닐까? 이대로 들어서 현관 밖에 버려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찜찜하잖아요. 누가 우리 집에 두고 갔는지는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 말이 맞아.”

두 사람이 짧은 대화를 끝내고 외계인에게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것에게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두 손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고무 재질로 된 장갑이라도 낀 것처럼 두꺼운 주름이 간 손을 가슴 높이까지 올린 채 끝이 둥글고 납작한 손가락을 정면을 향해 펼친 자세였다. 이휘는 저도 모르게 눈을 둥글게 뜨고 입을 벌렸다.

짧은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블라디미르가 이휘를 쳐다보자, 그가 변명하듯 말했다.

“당신 생각이 나서 어쩔 수 없었어요, 볼로댜.”

그 말에는 블라디미르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기묘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외계인은 블라디미르의 옛 버릇을 충실히 재현하듯 손가락을 펼친 자세를 유지하며 가만히 앉아 있었고, 이휘와 블라디미르는 그것을 마주본 채 서 있는 것이다.

십 분 정도가 지났을까.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자니 조금 피로해질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의 몸에서도 다시 힘이 빠져나갔다. 이휘가 낮은 목소리로 블라디미르에게 말을 건넸다.

“그때의 당신은 틀 바깥의 존재가 되려고 했었죠.”

“…그래.”

“꼭 저렇게요.”

“그랬었지.”

이휘는 잠시 침묵한다.

“사진을 찍어서 증거를 남겨 둔 후에 들어다 버릴까요. 다시 생각해 보니 당신 의견이 옳은 것 같습니다.”

“역시 집에 두기도 찜찜하지? 그러자.”

이휘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외계인의 사진을 찍었다. 혹시나 해 화면을 확인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그것의 모습이 제대로 찍혀 있었다. 블라디미르는 외계인을 들어 내놓으려 그것의 어깨와 오금을 붙잡았고, 즉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볼로댜!”

이휘가 블라디미르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를 붙들자 그 또한 의식을 잃었다. 눈앞이 새까맣게 어두워지는 것이 이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휘, 이휘. 정신이 들어?”

이휘는 큼직한 손이 자신의 어깨를 흔드는 감각에 눈을 떴다. 블라디미르의 얼굴이 보였다. 이휘는 안도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손 아래로 차갑고 입자가 고운 모래가 잡혔다.

“볼로댜, 여기는…?”

“그게 말이지. 저쪽을 봐야 할 것 같아.”

저편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휘는 반사적으로 안경을 벗어 옷깃으로 알을 닦아내고 다시 썼으나, 그렇다고 해서 눈앞의 풍경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지구를 보고 있었다. 구름을 베일처럼 두른 푸르른 구가 어두운 우주의 복판에 떠 있었다. 손에 쥐인 모래를 내려다보니 창백하도록 희다. 이휘는 그들이 달의 표면에 있음을 직감했다.

“우리는 집에 있지 않았나요? 분명 당신이 외계인을 들어올리려 했었고….”

“맞아. 추론해 보자면, 내가 그것과 물리적으로 접촉했기 때문이 아닐까 해.”

“타당해요.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월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동의해. 아마 환각이나 꿈이겠지. 정말 이상한 일들 투성이로군.”

이휘가 쓴웃음을 지으며 자세를 고쳤다. 그는 서늘한 모래 위에 앉아 정면에 거대한 달처럼 떠 있는 지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만나게 된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잖아요.”

블라디미르가 낮은 소리로 웃으며 이휘의 옆에 앉았다. 상체를 기울이면 어깨가 닿을 거리였다. 둘은 등을 숙이고 무릎을 세운 자세로 나란히 앉게 되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 고적한 달의 표면, 연인은 창백한 푸른 점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블라디미르.”

“응?”

“외계인이 된 기분은 어때요?”

꿈속의 일이라 생각하니 더욱 솔직해지게 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블라디미르가 눈을 돌려 이휘를 응시했다.

“나쁘지 않아. 하지만 이건 분명 당신이 곁에 있어서 그런 것일 테지.”

“그래요.”

“혼자 외계인이 되어 살아야 한다면 분명 쓸쓸했을 거야.”

월면에 웅크리고 앉은 한 쌍의 외계인이 누구랄 것 없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들은 지구의 표면에서 한 뼘 정도 떨어져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이 외로운 이방인의 삶. 분명 서로가 없었다면 견딜 수 없었으리라.

그들은 지구의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달 위에서 입을 맞추었다.

 

감았던 눈을 떠 보니, 그들은 외계인이 앉아 있던 소파 위에 늘어져 있었다. 해가 저무는지 창밖에서부터 노을의 붉은빛이 쏟아져 들어와 집 안이 온통 주홍빛이었다. 휴대전화로 날짜를 확인해 보니 여전히 이천이십구년 오월 십구일. 잠시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던 블라디미르와 이휘는 외계인을 찍은 사진을 열어 보았다. 사진 파일은 무사히 남아 있었다. 눈을 둥그렇게 뜨고 화면을 들여다보던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말았다.

휴대전화에는 소파에 앉은 블라디미르와 이휘의 모습이 가족사진처럼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