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원은 어디서부터일까. 사랑이라는 불가사의는 대체 어디로부터 비롯되어 피어나고 또 덧없이 지는가.
바다처럼 넓은 장강의 저편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희사는 거친 강바람을 맞으며 사랑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자신에게 예고도 없이 닥친 사랑, 그 애끓는 연심에 대하여.
당희사는, 혁련지를, 사랑한다. 이 문장은 희사에게 있어 당연한 명제가 된 지 오래였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가망 없는 짓인가를 알면서도 제어할 수 없었다. 그는 당가의 방계 출신 사내 된 몸으로 감히 곤륜의 본산제자에게 마음을 품었다.
적어도 혁련지라는 사내가 본산제자가 아닌 속가제자였더라면. 혹은 당희사가 본가의 여인이라도 되었다면 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정은 가정일 뿐, 주어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희사는 강바람에 흩어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승기가 없는 싸움이다. 희사는 이미 패배한 채로 비무를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을 내던질 수 없는 것이 사랑의 가장 불합리한 점이리라.
“배가 뜨려거든 아직 멀었는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오?”
희사는 단번에 화색을 띠며 고개를 돌렸다. 혁련지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희사의 함박웃음을 마주한 그는 버릇처럼 곤란한 낯을 한다.
“…아무래도 본인이 괜한 질문을 한 것 같군. 진지한 얼굴이기에 고민이 있는가 했더니.”
“하하.”
아주 재미있는 말을 들은 것처럼 희사가 웃었다.
“귀하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이미 눈치채신 것 같지만.”
“당 대협.”
한숨 섞인 목소리. 그러나 희사는 그것마저도 달콤하게 감각하였다. 이어지는 말은 몇 번이고 들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본인이 대협의 마음에 보답할 수 없는 것을 알지 않소.”
“저만큼 그것을 잘 아는 이는 중원을 통틀어 찾아도 없겠지요.”
희사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였다. 혁련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야말로 도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저 남자가 어찌 연정을 알겠는가. 그러나.
“괜찮아요, 혁련 대협.”
엷은 미소를 띤 낯으로, 당희사는 고한다.
“보답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귀하를 그리는 것이 아니에요. 자력으로 멈출 수 있다면 진작에 이 마음을 멈추고 귀하를 떠났을 거예요.”
미지근한 강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칼과 옷자락이 어지럽게 흔들고 지났다.
“이건 일종의 불가항력이에요.”
물을 젓는 소리가 들려 희사는 고개를 돌린다. 강 저편으로부터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보세요, 대협. 드디어 배가 도착하는군요. 오늘 중으로는 장강을 건널 수 있겠어요.”
당희사가 혁련지를 처음 만난 장소는 어느 야산의 오솔길이었다. 홀로 강호를 주유하던 희사는 산을 넘던 도중 산적 한 무리를 마주했었다. 그러나 염려되는 상황은 아닌 것이, 척 보아도 녹림에 이름을 올릴 수준도 못 되는 어중이떠중이들이었다. 이런 놈들보다야 산중에서의 밤이 훨씬 더 무섭다. 일일이 권각으로 때려눕히기에는 시간이 소요되니 하독을 할까 하는 고민하던 차에, 그가 나타났다.
그가 무어라 말했더라. 무고한 행자에게 손대지 말라 했었던가. 처음 만났을 무렵의 혁련지는 강호의 경험이 적었기에 지금보다도 더욱 요령이 없었다. 산적이 나타날 것이 뻔한 산중을 홀로 헤집고 다니는 젊은 사내가 어디 보통의 여행객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혁련지는 아주 올곧은 눈을 하고 희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당희사는 산적들을 목전에 두고 박장대소를 하고야 말았었다.
도사라 치기에는 지나친 미남자라는 생각이야 처음부터 했었지만, 자신이 이런 남자를 이토록이나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희사는 흘러가는 강물에 시선을 던지며 미소짓는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자면, 혁련지가 이러한 미남이 아니었더라도 당희사는 언젠가 반드시 그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혁련지가 자칫 갑갑하게 느껴질 정도로 올곧은 사내라는 점이 좋았다. 저 먼 곤륜산으로부터 내려와 중원을 주유하고 있는 까닭이 협을 행하기 위함이라는 사실도 좋았다. 자신이 막무가내로 그를 따라붙어 연심을 숨기지도 않고 드러내는데도 밀어내지 않는 점마저도 좋았다.
아무 것도 돌려받지 못한대도 그에게 주고 싶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그와 함께 산과 들에서 야숙할 때마다 식사를 만들어 나누는 것이 행복했다. 혁련지가 곤란한 기색을 보이다가도 언뜻 미소를 비추는 순간이면 가슴이 뛰었다.
당희사에게 있어 사랑이란 이름 모를 봄꽃의 향처럼 달큰하고도 알싸한 것이 되었다. 그는 뱃전에 서서 아직은 멀리 있는 뭍을 바라보는 혁련지를 눈에 담는다. 그의 옆얼굴을 보고 있자니 바보처럼 웃음이 나왔다. 그 때, 그에게로 수줍은 듯 다가서 말을 붙이는 여인이 보였다. 희사의 낯이 굳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혁련지와 이름 모를 여인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인사를 주고받은 후 멀어졌는데, 혁련지가 옅게 미소를 띤 것이 유독 눈에 밟히었다.
마음이 욱신거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혁련지와 당희사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고, 그의 미소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속이 상했다. 희사는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알 수 없어졌다. 혁련지가 그를 언뜻 돌아보고 당황하는 것을 보니 처참한 낯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수치스러웠다. 사랑 같은 것에 이토록 휘둘려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당희사는 처음으로 먼저 고개를 돌려 혁련지를 외면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기가 괴로워 선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희사는 그대로 선실 구석에 콕 박혀 반나절쯤 눈을 붙였다. 감정의 격랑이 무인의 단련된 정신마저도 피로하게 한 것이다. 불편하게 웅크린 채로 자다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선내가 온통 소란한 것이 느껴졌다. 희사는 갑판으로 나가 상황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둥글게 몰려 서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끝에 보인 것은 낮에 혁련지에게 말을 붙였던 여인의 시신이었다.
여인은 입가에 검은 피를 칠갑한 채 죽어 있었다. 배에 타고 있던 무림인들이 사람들을 물리고 간단히 여인의 시체를 살폈는데,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처가 전혀 없고 입가의 피에서부터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이 독살이 분명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희사를 향했다가 불에 덴 듯 멀어졌다. 당가의 방계씩이나 되는 인물이 공공연히 사람을 죽일 리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독살이라는 말을 들으니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희사는 불쾌해졌으나 의식적으로 낯빛을 가다듬었다. 당가를 향한 세인들의 본능에 가까운 공포에는 이미 익숙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정작 희사를 상처입힌 것은 다름아닌 혁련지의 눈빛이었다. 여인의 시신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한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의심이 담겨 있었다. 뒷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감각이 닥쳐왔다. 희사는 얼떨떨한 정신을 추스르며 사람들이 당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를 행한다. 그는 여인의 입속을 살피고 상시 휴대하는 약품으로 핏속의 독을 검출하였다. 거미독이었다. 이를 무림인들에게 고하고 자신이 여인과 안면조차 없음을 알리는 내내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손끝의 감각이 둔하고 발이 허공을 딛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선내의 무림인들은 상의 끝에 이 일을 관아에 알리기로 정했고, 희사는 이야기가 끝나는 즉시 선미로 도망쳤다.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희사는 갑판 위에 맥없이 주저앉은 채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그는 합당한 의심을 품은 것이다. 워낙에 솔직한 인사이니 생각을 숨기지 못했으리라. 강호인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독살을 당했으니 독인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것도 당연했다. 밤바람이 차가운 것이 냉정해지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세인들의 당가를 향한 편견이 혁련지만을 빗겨가리라 믿은 것은 아니겠지 하며 스스로를 맵게 비웃어도 보았고, 그를 향한 자신의 맹목을 그가 돌려주어야 하는 법은 전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해도 보았다.
그러나 가슴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혁련지는 당희사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두 계절이 훌쩍 넘도록 그를 따라 강호를 떠돌며 감정을 숨긴 적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의 결백쯤은, 믿어 주었어도 좋았을 것을….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혁련지가 서 있었다. 당희사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했고, 혁련지는 잠시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아니오?”
희사는 저도 모르게 와락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그 여인이 내게 말을 붙이던 때에 귀하의 표정을 보았소. 그 얼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런 의심을 품었을 것이오.”
두 계절. 반 년쯤 되었을까. 일수로 환산하면 며칠쯤이 될까.
그동안 희사가 그에게 바친 마음은 다 무엇이었을까.
“그간 저를 보아오시며 내린 판단이 이것이로군요.”
희사는 자신이 내뱉은 목소리가 어색할 정도로 싸늘함에 놀랐다.
“저라는 인간을 질투 따위로 인해 사람을 해하는 부류라 보신 것이로군요.”
“당 대협.”
눈시울이 뜨끈해지더니 젖어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를 이해하려 애썼으나 더는 무리였다. 자신이라면 이렇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 당희사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더라면, 이렇게 냉정하지는 않았을텐데….
사랑의 기원은 어디서부터일까. 사랑이라는 불가사의는 대체 어디로부터 비롯되어 피어나고 또 덧없이 지는가. 당희사는 이것에 대하여 오래도록 고민하였으나 결국 답을 찾지 못하였다.
사랑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이켜보면 당희사의 사랑은 물처럼 흘렀던 것도 같다. 그것은 산중에서 시작되어 강에서 끝이 났고, 이제 사랑의 파편은 장강을 타고 흘러 바다로 갈 것이다. 눈물이 고였으나 흐르지는 않았다. 그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당희사는 고개를 들어 혁련지를 바라본다.
“장강 이북에서는 어디로 향하실 생각이신가요, 혁련 대협.”
혁련지는 당희사의 말간 낯을 아주 낯선 것 보듯이 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든 귀하가 가시는 곳의 반대편으로 가겠어요.”
그 말을 들은 혁련지가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희사가 먼저 말함으로써 그의 입을 막았다.
“이제 그만하기로 정했다는 뜻이에요. 그간 제가 참으로 번거롭게도 해 드렸지요….”
“당 대협.”
“단 한 번도 이름을 불러 주시지 않으셨어요, 그러고 보면.”
이리 냉정한 사람이었구나. 당희사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사랑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불현듯 찾아왔다가 붙잡을 틈도 없이 떠나갔다. 어두운 강물 저편으로 보이는 육지가 퍽 가깝다. 이제 진실로 떠나갈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