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의 행방
딱복2025-04-25 00:54

“어디로 가시려는지요.”

“소림으로 향할 생각이었소.”

“소림으로요.”

“본산과 소림 간에는 오랜 교분이 있어 왔소. 알고 있겠으나.”

“그렇군요.”

희사는 고개를 끄덕일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동행을 구하는 요청이라던가 이별을 아쉬워하는 기색이라고는 일절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혁련지가 당혹스러워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면 이것이 맞았다. 당희사와 혁련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고, 여지껏 둘을 이어주던 것은 오직 당희사의 사랑뿐이었다. 그것이 사라진 지금에 와서는 교분을 유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이토록 한 순간에 돌아서다니.’

혁련지는 영문도 모른 채 서운함을 느꼈다. 지난 반년간 물처럼 자연스럽게 그를 향하던 살뜰한 애정과 관심이 일순간에 거둬지자 돌연 쓸쓸해진 것이었다. 혁련지는 영민한 남자였으나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문외한이었고, 따라서 그는 당희사가 자신에게 품었던 마음의 깊이와 빛깔을 몰랐다. 또한 그 사랑이라는 것이 사라진 자리에 어떠한 무심함과 냉정이 남는지도 알지 못했다.

배에서 내려 뭍에 발을 디딘 희사가 전에 없이 예를 갖추어 혁련지에게 포권을 쥐어 보였다. 

“그간 실례가 많았습니다, 대협.”

당황에 말문이 막힌 혁련지가 무어라 대답을 짜내기도 전에 희사는 몸을 돌렸다. 오래도록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사라진 것마냥 마음이 가뿐했으나 동시에 허무감이 들었다. 무심한 사람이었으나 사랑했다. 그에게는 상처를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등 뒤로 드넓은 장강의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희사는 그곳에 제 사랑을 띄워 떠나보내기로 하였다. 몇 번이고 후회해 뒤를 돌아본대도, 이 편이 나을 것만 같았다. 등 뒤에 선 혁련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가 궁금했지만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되돌려주지 않을 이에게 마음을 퍼내어 건네는 짓은 그만두자. 그리 정하고 나니 도리어 후련하였다. 당희사는 떠나간다. 물길을 따라, 목적지도 망설임도 없이. 

 

강기슭에 선 혁련지는 멀어지는 당희사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당희사의 애정은 그에게 있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애정이 거두어진 이후에 남은 공허는 더한 불가해였다. 대관절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이기에 저 남자는 그토록 자신에게 헌신했고 또 사랑이 저물자 고통 없이 떠나간단 말인가. 알 수 없었다. 혁련지는 한참을 못박힌 듯 서 있다가 당희사의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호의 천년북두라 불리는 소림의 본산은 무림인들에게 있어 동경의 장소였다. 향화객으로 방문할 수는 있겠으나 소림의 무승을 만나기는 어렵고 그들과 무학을 논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소림사에 방문해 그들의 무공을 견식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평소의 혁련지라면 아무련 잡념 없이 비무와 논검에 집중했을 터.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떠나가던 당희사의 뒷모습이 그의 머릿속을 메우고 있었다.

혜원이라는 법명을 쓰는 중년의 무승이 다가와 사려 깊은 어투로 물었다.

“고민이라도 있으신 모양입니다, 도장.”

그는 방금까지 혁련지와 맨손 비무를 벌인 이였다. 손을 섞어 보니 혁련지가 비무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혁련지도 금세 자신이 잡념에 빠져 비무에 소홀했음을 깨닫고 낯을 붉혔다.

“면목 없습니다, 스님. 일과 중의 귀한 시간을 빼앗은 것도 죄송한데 이런 불찰을….”

“아닙니다. 단지 도장께서 심란하신 듯하여 여쭌 것뿐입니다.”

“속세의 고민입니다. 스님께 감히 말씀드릴 이야기도 못 됩니다.”

혜원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는 반쯤 본능적으로 눈 앞의 도사가 품은 고민이 연애사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캐묻거나 넘겨짚으면 큰 실례가 될 터. 혜원은 점잖게 화제를 돌리기로 정했다.

“예. 어떤 일이신지 말씀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도장, 너무 깊은 염려는 마십시오.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도가의 가르침이기도 하지 않던가요?”

잠시 입술을 꾹 다문 채 말이 없던 혁련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후배의 고민을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혜원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논검을 시작했다.

짧게 비무의 복기를 마친 혁련지는 소림사의 경내를 산책하기로 마음먹고 전각을 벗어났다. 방문객에게 허락된 영역만 해도 하루 종일 돌아보아야 할 정도로 넓었기에 그는 한참 동안 걸으며 생각을 곱씹을 수 있었다. 소림에서 무학을 논하는 귀한 기회를 목전에 두고도 그는 어쩔 도리가 없이 사랑에 대해 생각하였다. 정확히는, 당희사가 그에게 쏟아준 사랑에 골몰하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곤륜산에 틀어박혀 수련에만 몰두해 왔기에 혁련지는 사람과 사람 간의 감정에 어두운 편이었다. 더군다나 연심이라니. 그것은 도사에게 있어서는 불필요한 감정이었다. 인세의 오욕칠정을 떨쳐내고 등선하고자 수양하는 이들에게 사랑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당희사가 스스로 마음을 접고 떠나 주었으니 이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제 더는 그의 마음으로 인해 곤란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떠나가는 뒷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어째서일까. 혁련지는 깊은 물 속을 들여다보듯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것은 부채감인지도 몰랐다. 지금껏 당희사는 혁련지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었고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희사에게 받아온 것들을 전혀 갚지 못한 채 그를 떠나보냈으니 마음이 불편한 것도 당연했다. 

혹은 그저 익숙해진 사람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일런지도 몰랐다. 당희사가 그에게 동행을 요청한 것은 반 년도 더 된 예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그들은 함께 강호를 주유하며 크고 작은 일들을 겪어왔다. 인간 대 인간으로 정이 쌓이기에는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희사는 예고도 없이 떠나갔으니 그의 빈 자리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정말로 그것이 전부일까?

혁련지는 걸음을 멈추었다. 인적 없는 산 속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선 채, 그는 솔직해지려 애썼다. 여지껏 눈을 돌려 왔던 하나의 문장을 마주할 각오를 다졌다.

누군가를 이토록 오래 생각한다는 것은, 그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혁련지는 어쩌면 당희사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묻어 두었던 상념을 인정하니 그리움은 더욱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변하였다. 혁련지는 당희사의 면면을 떠올린다. 그가 자신을 돌아볼 때에만 짓던 아주 반갑고도 그리운 것을 보는 듯한 웃음. 차고 맑은 샘 같던 그 눈동자. 그리고 감히 부정할 수 없다는 듯 선뜻 드러내던 자신을 향한 사랑.

그랬다. 혁련지는 당희사의 사랑이 그리웠다. 물처럼 자신에게로 흘러오던 그의 사랑이 사라지자 그 빈 자리를 견딜 수 없어졌다. 그는 이토록 낯선 그리움 앞에서 말을 잃는다. 사랑을 받아 본 것도, 그것이 떠나간 것도, 처음이었다.

후회가 들었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강호는 드넓고 무림인은 구름처럼 많으니 수소문해 찾더라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더군다나 희사는 자신을 드러내며 움직이는 성향이 아니었다. 이제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작별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겉잡을 수 없이 외로워졌다. 그를 만나기 전에도 홀로 떠돌았으니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 뿐인데도, 마치 처음으로 세상 가운데에 떨어진 것처럼 쓸쓸하였다.

 

소림을 떠나 다시금 강호. 혁련지는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목적지 없이 강호를 주유하였다. 칼 찬 사람이 선의를 행하면 끼니와 잠자리는 무리 없이 마련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따금 산을 넘을 때에는 운 없는 산적 무리를 만나 여비를 보충하기도 했다. 그는 당희사의 부재를 부채처럼 떠안고 습관처럼 외로워하며 걸었다.

세상은 단 한 번도 평화로웠던 적이 없는 것처럼 어지러워, 그의 손이 필요한 곳은 넘치도록 많았다. 혁련지는 통행세를 지나치게 많이 걷는 녹림도를 처단하고 한 마을 전체를 휘어잡은 흑도방파의 방주를 물리치기도 하며 가을을 보내었다. 머잖아 겨울이 올 것이다. 당희사와 작별한 것이 여름의 막바지였으니 벌써 한 계절이 지나간 것이다. 그는 섬서를 목적지로 잡고 길을 떠났다.

멀리 화산이 보이는 작은 여곽촌에 도착한 혁련지는 간만에 지붕 있는 잠자리에서 쉴 것을 기대하며 객잔으로 향했다. 국수와 백주를 시켜 놓고 앉아 있자니 점소이가 너스레 좋게 말을 걸어왔다.

“이것 참 별일입니다. 이렇게 작은 촌동네에 외지 분이 이렇게나 자주 방문하시다니요.”

“나 말고도 여행자가 있소?”

“그렇습니다. 어제 도착하신 분인데, 요리 솜씨가 아주 끝내주셔서 소인도 많이 배웠습죠. 아, 저기 오시는군요.”

점소이가 객잔 입구에 드리운 발을 걷고 들어오는 인물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여 보였다.

“오셨습니까, 당 대협!”

반사적으로 그를 돌아보면 혁련지가 점혈이라도 당한 사람마냥 딱딱하게 굳어졌다. 당희사였다. 당희사도 놀랐는지 객잔의 입구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점소이가 둘의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주방으로 사라졌다.

먼저 침착함을 되찾은 사람은 혁련지였다. 그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고 포권을 쥐어 보였다.

“오랜만에 뵙소이다, 당 대협. 이리 앉으시겠소?”

어색한 침묵 후에 당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변의 산에서 약초를 캐고 온 것인지 작은 망태기를 들고 있었는데, 옷깃에서 풀과 바람 향기가 풍겼다. 혁련지는 점소이가 내온 술을 한 잔 따라 희사에게 건네었다.

“감사해요.”

“…그간 잘 지내었소?”

망설임 끝에 내뱉은 물음에 당희사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혁련지가 자신에게 안부를 물은 것이 의외로워 그랬다. 그런 식으로 헤어졌는데도 다시 만난 자신에게 술을 권할 줄은 몰랐다.

“예, 덕분에요.”

혁련지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덕분에요, 하는 상투적인 인사말이었으나 들을 자격이 없다 여겨졌다.

“종종… 아니. 자주 귀하를 생각했다오.”

술로 입술을 축이던 당희사가 귀를 의심하며 혁련지를돌아보았다.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 같은 반응이었다. 어안이 벙벙하다는 기색이 가득한 시선을 받고도 혁련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떠나고 나니 빈 자리가 느껴져서 말이오. 귀하가 내게 주었던 호의와 배려, 그리고…. 애정 같은 것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방어적인 어조였다. 그러나 이것이 당연한 반응이었다. 혁련지는 항상 당희사에게 무심한 사람이었고, 당희사의 애정을 모르는 체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 다정한 투로 말을 거니 의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희사는 당혹스러운 낯으로 혁련지를 쏘아보았다. 눈 앞의 남자는 여전히 화가 날 정도로 근사한 얼굴을 하고, 그러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마치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이를 만난 듯이, 자신이 반갑기라도 한 듯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리다.”

혁련지가 당희사와 눈을 맞추었다.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는 말한다.

“다시금 나와 동행하지 않겠소?”

“…어째서요.”

“나도 알 수 없소. 그것을 알고자 하여 청하는 것이오.”

당희사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낯을 찌푸렸다. 그것은 불쾌감이 아닌 곤란한 설렘으로 인함이었다. 분명 전부 흘려보냈다고 생각했건만, 사랑은 바위틈의 샘처럼 다시금 솟아나 강으로 흐른다. 무심할 때에도 아프도록 사랑한 남자였다. 그러니 자신에게 동행을 요청하는 저 간절한 눈을 앞에 두고는 어찌한단 말인가. 당희사는 사랑 앞에 무력하다.

“뜻대로 하세요.”

패배 선언과 다를 바가 없는 말이었다. 혁련지는 그의 승낙에 눈에 띄게 기뻐하였고, 당희사는 영문을 모르면서도 그가 웃자 따라 웃고 말았다. 이성으로는 제어할 수가 없었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당희사는 혁련지에게 이끌린다. 말라 버렸다고 생각했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당희사와 혁련지는 다시금 서로의 동행인이 되었다. 이 감정의 물길은 어디로 흐를까. 지금은 알 수 없대도, 분명 호수가 되어 머무를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