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살과 우중 미남에 대한 건
딱복2025-04-25 00:55

서늘한 비가 오는 한낮. 초여름에 가까웠다고는 하나 비가 내리는 날에는 아직도 스산하였다. 류원청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젖은 어깨를 턴다. 종로통 구석진 길목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은 평소에도 해가 들지 않았고, 날이 궂으면 아예 한기가 돌았다. 원청은 페치카에 불을 댕기고 겉옷을 옷걸이에 건 후에 책상 앞에 앉았다. 이런 날에는 대개 손님이 드물었기에 오늘은 밀린 신문을 전부 읽을 참이었다. 원청은 책상 위에 신문을 쌓아 두고 한 부를 골라 펼친다. 그런데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계십니까?”

단정한 청년의 목소리였다. 원청이 문을 열어 주자 검은 우산을 쓴 사내가 서 있었다.

“여기가 심부름도 해 주고 남의 뒤도 캐어 주는 곳이라 해 왔습니다만.”

“예, 심부름도 해 주고 남의 뒤도 캐 주고 합니다. 들어와요.”

사내는 우산을 접고 사무실에 들어와 원청의 맞은편에 앉았다. 색이 옅은 머리칼을 단정히 쓸어넘기고 쓰리 피스의 정장을 입은 그는 대단한 미남자였다. 낯이 익었더라면 활동사진 배우라고 착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원청은 속으로만 휘파람을 불었다. 경박스럽게 굴어 첫인상을 망칠 생각은 없었다.

“그래. 이렇게 근사한 모던-보이가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사내의 곱상한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그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입을 연다.

“제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 주십시오.”

 

미남자의 이름은 구영이라 했다. 제대의 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좋게 말해도 기생집 기둥서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우대는 멀쩡한 사람이- 아니, 허우대가 지나치게 멀쩡한 탓일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그는 돈 많은 기생이며 부인들에게 붙어 학비며 생활비를 우려내는 종자였던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들어보자니 이 또한 어처구니없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구영의 물주 중 하나인 부인이 지난밤에 교살을 당했는데, 그 집 가정부가 퇴근할 무렵에 구영이 방문한 것을 보았다. 이튿날 가정부가 출근을 해 보니 부인은 목에 큼직한 손자국을 멍으로 단 채 죽어 있었다. 가정부는 젊은 아가씨로, 손자국의 크기가 맞지 않은 덕에 용의선상에서 진작 배제되었다. 게다가 구영이 부인의 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이웃집 사내가 목격해 이를 진술했다.

순사들은 홀로 사는 조선인 여자가 죽은 사건을 대단치 않게 여겼고 형식적인 수사를 거쳐 구영을 범인으로 내정했다. 구영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는 오늘 아침에 서로 출석하라는 명을 받았고, 가진 인맥을 총동원해 방법을 물색한 끝에 이 사무소를 찾게 되었다. 그의 결백을 믿은 어느 기생이 원청의 사무소를 알려주었다 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원청이 턱을 문질렀다. 영 곤란한 입장에 놓였다. 순사와 엮이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살인 누명이라니? 눈앞의 남자가 진짜 살인범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안 되겠다 거절하자, 하며 입을 떼려는 그 순간 구영이 품을 뒤져 작은 봉투를 건네었다. 열어 보니 지전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착수금입니다.”

“그 말은…?”

“제 누명을 벗겨만 주신다면야 두 배가 아까울까요.”

그랬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없던 동정심과 책임의식이 절로 샘솟았다. 원청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봉투를 품에 챙긴다.

“일단 사건 현장을 봅시다.”

 

류원청은 이래저래 발이 넓은 사내였다. 게다가 순사들에게도 이전부터 뇌물을 먹여 둔 바 있어 사건 현장에 쉬이 진입할 수 있었다. 사망한 부인의 집은 이 층짜리 아담한 문화주택으로, 정갈하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과연 저렇게 생긴 남자를 끼고 놀 법한 취향이라고, 원청은 무례한 생각을 한다.

사건을 담당한 순사가 부인은 응접실에서 살해당했다고 전해 주었다. 얼핏 보아도 엉망으로 뒤엎어진 방과 복도를 지나, 원청과 영은 온기 없이 서늘한 응접실에 들어섰다. 부인의 시체는 검안을 위해 옮겨진 터라 이 방에는 둘뿐이었다.

원청은 벽난로부터 시작해 소파까지 방 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눈에 띄는 흔적이 없었다. 부인의 몸에도 반항의 흔적이 없었다 했으니 면식범일 확률이 높았다. 정말로 저 사내가 살인범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원청은 짧게 한숨을 뱉고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었다.

“이봐요, 구 선생. 우리 솔직해집시다. 정말로 당신이 죽인 게 아닙니까?”

구영 또한 한숨과 함께 담배를 물었다. 그는 성냥으로 제 몫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원청의 것에도 불을 대 주었다. 익숙한 몸짓이었다.

“원청 씨께서 저를 의심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아닙니다. 저는 부인께 신세를 많이 진 사람입니다.”

담배의 주홍색 불빛이 구영의 얼굴에 극적인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짙은 음영 아래로 자리한 사내의 눈은 호소적이다. 원청은 영의 눈을 가까이서 올려다보며 새삼스럽게 그가 매력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부인의 젊은 애인 역할이라고 알았습니다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작고하신 부인께서는 제 제대 학비 일부를 지원해 주신 분이에요. 제가 은인을 죽일 정도로 인면수심인 사람으로 보입니까?”

그거야 나는 모르지. 원청은 속으로 읊조린다. 그럴싸한 껍질 아래 온갖 음흉한 생각을 품은 치들을 그는 많이 보아 왔다. 만난 지 반나절 된 남자를 덮어놓고 신뢰할 수는 없었다.

“착수금을 받았으니 최선을 다할 겁니다. 결백이 밝혀지면 좋겠군요, 구 선생.”

 

응접실 탐문은 아무 소득 없이 끝났으나 이대로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원청은 구영을 돌려보낸 후 넉살 좋게 주재소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사들에게 지전 몇 장을 찔러 주자 작고한 부인의 신상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의 이름은 오명희로, 어느 지방의 대지주였다던 남편을 젊을 적에 여읜 과부라 했다. 그는 소작 놓은 땅에서 나오는 돈으로 대단히 유복하게 지낸다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순사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상은 달랐다.

오 부인의 몫으로 떨어진 땅에 마름병이 돌고 가세가 기울어 최근 몇 년에 들어서는 수입이 변변찮았던 것이다. 중년의 과부 한 명이 품위를 유지하며 살기에는 모자람이 없었으나 소문에 비할 바는 못 되는 규모의 재산이었다.

원청은 오명희가 부유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나이 든 여자가 홀로 지내는 와중에 부자라는 소문이 퍼져 있으면 좋을 것이 없다. 아직 영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빤한 방식으로 살인할 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닌 듯 보였다.

그는 집을 나서는 구영을 목격했다던 이웃집 사내를 캐 보기로 하였다. 맞은편 주택에 사는 그 사내는 방직 공장을 운영하는 공장주라 하는데, 순사의 이름을 팔자 마을 주민들은 겁에 질려 그 집 숟가락 개수까지 털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근 일주일 간 이웃이며 친지들에게 돈을 꾸러 다녔다는 증언이 몇 건이나 나왔다. 공장이 도산할 위기에 처해 은행을 막을 돈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순사들에게 이를 전하자 그들은 번거로워하면서도 이웃집 사내를 심문하였다. 그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범행을 자백했는데, 궁지에 몰려 충동적으로 이웃을 살해한 것에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여차하면 폭력을 써서라도 자백을 받아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던 원청으로서는 다소 맥이 빠지는 일이었다.

 

“염려보다는 쉽게 끝났군요.”

“그래도 보수는 약속대로 드리겠습니다.”

살인 누명이 벗겨진 영은 한결 유들유들한 태도를 보였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평소 모습이리라. 그렇잖아도 잘생긴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걸리니 훨씬 보기에 좋았다. 과연 여자들이 죽고 못 살며 돈을 퍼다 줄 낯짝이다. 부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불러온 우수가 완전히 걷히지 않은 그의 얼굴은 그야말로 영문학도다웠다.

“그것 참 기쁜 말입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종종 차나 마시러 오세요. 주변에 심부름도 잘 하고 뒤도 잘 캐는 조선인 사내를 찾는 이가 있거든 소개도 해 주고.”

“아무렴요. 반드시 소개를 해 주겠습니다.”

“앞엣말에 대한 승낙이 없군요, 구 선생.”

“무어 말입니까?”

“차나 마시러 오라는 말이요.”

그가 특유의 뻔뻔한 낯으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영은 뜻밖에도 당황한 기색을 비추었다. 원청은 멋대로 그것을 긍정적 신호라 해석한다.

“내가 또 차를 잘 끓입니다.”

원청이 능청스레 눈을 찡긋하고, 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원청은 이 또한 긍정적인 신호라 해석하기로 한다. 

“그러면 방문을 기다리겠습니다, 구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