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클론을 만들어 보세요! 설마 아직까지 고민만 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여기에 새로운 클론 제작 알고리즘인 알데바란-33이 있습니다!
대형 광고판에 설치된 스피커가 괴로울 정도의 볼륨으로 클론 제작 설비에 대해 외치고 있었다. 밤하늘은 더러운 붓을 천 번 정도 담갔다 빼낸 물통처럼 얼룩덜룩하다. 어지러운 네온사인과 끔찍한 소음은 도시의 향신료 같은 것이라, 신음과 눈물 따위의 ‘잡내’쯤은 말끔히 가려줄 수 있다. 그것은 어느 뒷골목을 거닐던 두 인간 중 하나가 대뜸 팔이 잘려 나동그라진다 해도,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페르디난드 리겔- 혹은 페란이라 불리는 이 남자의 인생을 멀리서 들여다본다면 구불구불한 하향곡선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그의 삶은 불운과 재앙으로 인해 실시간으로 박살이 나는 중이었고, 그 재앙 중 하나는 심지어 잘 빠진 하이힐을 신고 그의 집으로 쳐들어오기까지 했다. 마누엘 파비아노, 이제는 매니라 불리게 된 그 사람은 페란의 인생쯤은 손끝으로 툭 쳐 거꾸러뜨릴 수 있는 장난감인 양 굴었다. 실제로도 그렇기는 했다. 매니는 못된 장난기와 흥미만으로 페란의 인생을 진창에 처박았다.
물론 페란이 지나칠 정도로 무른 탓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매니의 죄가 죄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페란은 이상할 정도로 헐겁고 무른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로 무르냐 하면,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는 불청객과 동거하며 그와 장을 보러 밤거리를 걸을 정도로 물렀다. 또한 그 밤거리에서 갑작스런 저격으로 인해 -분명 소형 양자포일 것이다- 불청객의 팔이 떨어져나갔을 때 그를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올 정도이기도 했다.
마침 집에 거의 다 와 가던 것이 천운이었다. 페란은 곁방으로 매니를 질질 끌고가며 생각한다. 그들의 넓지 않은 집 곁방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고가의 전문가용 종합 의료기기 세트가 구비되어 있었다. 피를 가까이할 일이 많은 뒷세계 일의 특성 때문이었다. 합금 침상에 매니를 눕힌 페란은 다시 현관으로 달려가 소파며 식탁 따위를 끌어다 문을 막았다. 소형 양자포를 가까이에서 쏜다면 단번에 박살이 나겠지만 시간이야 벌 수 있을 것이다.
페란은 기계적으로 손을 소독하고 의료기기 세트의 조작판 앞에 섰다. 환부를 살피고, 세척하고, 지혈한 후 수혈 팩을 연결하는 일련의 동작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탓에 능숙하다. 매니는 고통에 몸을 떨며 간헐적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매니, 매니.”
매니는 길게 앓는 소리를 내며 이를 악물었다. 페란은 그것을 대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매니, 정신을 잃으면 안 돼요. 당신 이름이 뭐죠?”
“… 마누엘 파비아노.”
의료기기 자체는 베가 EX-2 모델로 고급품이었으나 구비된 약품이 모자라고 절단된 팔을 챙겨오지 못한 것이 큰 문제였다.
“여기가 어디에요?”
페란이 아무리 애쓴다 해도 응급처치 정도밖에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중요한가?”
“네. 중요해요.”
매니는 대답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행동한다. 열에 들뜬 눈을 돌리고 입술을 깨문다.
“대답해요.”
“… 집.”
집. 페란은 손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되뇌인다. 이곳은 정확히 말하자면 페란의 집이었다. 그곳에 매니가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이밀어 반 동거의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매니는 이곳을 집이라 말했다. 페란은 다시 무엇이든 질문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아랫입술이 떨리는 것은 분명 긴장으로 인한 것이리라.
“키우는 고양이 몇 마리예요?”
진통제가 퍼지기 시작하는 것인지 매니는 간헐적인 경련을 멈추었다.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기는 하였으나 그는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으… 그건 내 생각엔, 유리로 된 어항에-”
“아무 것도 안 키우잖아요.”
우린, 하고 덧붙일 뻔 한 페란이 간신히 말을 맺었다. 그는 의료기기를 조작하고 상처를 돌보는 일에 아주 숙달된 사람이었기에, 손을 움직이는 동시에 어지러운 생각에 빠져들고 말았다.
페르디난드 리겔과 마누엘 파비아노는 ‘우리’라는 단어로 엮일 수 있는 사이인가?
한 번 시작된 상념은 구르기 시작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수혈팩을 확인하는 단 몇 초의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생각이 페란의 머릿속을 내달렸다. 창 밖으로 도시의 소음이 아스라한데, 이 방 안은 세상과는 분리된 것만 같았다. 의료기기의 거대한 몸뚱이가 내뿜는 건조한 열기와 매니의 간헐적인 신음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 했다.
지금 이대로 등을 돌려 방을 벗어난다면 매니는 죽을 것이다. 혹은 이렇게 할 수도 있다. 양 손을 들어올려 매니의 목을 조르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매니가 페란에게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그래도 쌌다. 페란의 곤란한 불운을 거대한 불행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이 사람 아니던가!
정성껏 소독한 손의 손금 사이로 땀이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페란은 뒤를 돌아선다. 다시 손을 소독하고 돌아와 진통제와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는가를 살핀다.
페란은 매니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드물게도 씁쓸한 기분이 되어 자신을 비웃으며, 페란은 매니에게 말한다.
“정신이 좀 들어요? 피가 멎으면 움직여야 할 거예요. 여기에서는 응급처치 이상은 불가능해서, 아마 ‘공장’으로 가야 할 거예요.”
“팔을 두고 왔어? 아, 젠장. 문신한 쪽이었는데.”
공장은 페란이 연루된 불법 클론 제작소를 말했다. 통증으로 오만상을 찌푸린 매니는 끙끙 앓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몸을 추스를동안 페란에게는 짧은 숙고의 시간이 주어진다.
요즘 같은 시대에 좀 사는 집이라면 클론 두엇은 만들어 두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클론의 윤리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말이 많았다. 완벽하게 복제된 클론은 자아를 가져 스스로 사고하고 움직이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거대하고 위대한 손은 부품이 되어야 하는 자아들에 대한 고민 따위는 아랑곳않고 클론들을 찍어냈다. 그리고 페란은 클론 제작의 윤리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방금의 그는 자연스럽게 공장을 입에 담았다. 공장에서 클론을 만들어내 매니의 팔을 복원할 생각을 했다. 조금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매니와 엮인 이후로 페란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며 살게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사람을 힘껏 때려 보았고, 협박했으며,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다. 범죄에 손을 담그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 그야말로 소시민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자아의 소유자에게는 고통스러울 뿐인 경험들이었다. 그러나 페란은 버텨냈다. 그는 감당하기 버거운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이 감각적 자극으로 도피하지도 않았고 스스로와 타인을 충동적으로 해치지도 않았다. 페르디난드라는 한 인간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랬다.
그러나 이 건은 조금 달랐다. 한 인간을 창조하고 그 인간을 이용한 후 폐기하는 과정을 전적으로 주도해야만 한다니. 페란은 신의 존재를 믿었고, 그렇기에 두려웠다. 그가 감당해야만 할 양심의 가책과 이 일 이후에 뒤따를 치열한 고민들이 무서웠다. 그를 책임지는 것은 페란의 의무가 아니다. 버리고 떠난다 해도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페란에게는 복수의 자격이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란은 선택한다.
페란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리자 때마침 진통제의 효과로 상체 정도는 가눌 수 있게 된 매니가 비척비척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페란은 얼른 다가가 그를 부축한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어쩌면….”
매니가 땅을 디디려 고개를 숙이자 난리통에 구두의 굽이 부러진 것이 보였다. 그는 잇새로 욕설을 뱉으며 짜증을 내었다.
“신발 가져올게요. 굽 없고 편한 걸로요.”
“부탁 좀 할게, 아저씨.”
낮은 신발을 신은 매니와 그를 부축한 페란은 뒷문으로 조용히 나와 도보로 이동했다. 누가, 혹은 어느 세력이 그를 공격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이런 상황에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공장까지는 뒷골목을 이용해 이십 분. 매니의 몸이 버텨줄지가 의문이었다. 페란은 그가 의식을 잃을까 염려되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매니, 정신 잘 차리고 있죠? 걸을 만해요?”
“걸을 만해.”
“… 공장에 가면 클론을 만들어 팔을 이식할 거예요. 준비하는 시간 동안에도 정신을 잃으면 안 돼요. 알죠?”
매니는 잠시동안 아무 말 없이 페란을 내려다보았다.
“클론을 만들어주게?”
“…그래야죠.”
매니가 조금 더 다감하거나 사려깊은 사람이었다면, 노골적으로 고뇌하는 기색인 페란에게 무언가를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다면 페란과 엮이지도 않았겠지. 매니는 심란한 기색의 페란을 그냥 보아 넘긴다. 대답은 무심하다.
“그렇구나.”
이후로 그들은 힘겹게 걸으며 신변잡기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어제 먹은 저녁 메뉴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광고 우편들이 지나치게 많이 와 짜증이 난다던가 하던 사소한 대화였다. 습하고 서늘한 뒷골목이 아니라 티브이를 마주본 소파에 앉아 나누었다면 제법 평화롭게도 느껴졌으리라. 그러나 의무감으로 대화 주제를 쥐어짜내는 페란과 통증 속에서 억지로 대답하고 있는 매니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공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안도감으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불법 클론 제작소는 보급형 의료기기 매장으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매장의 뒤편 지하로 내려가면 널찍한 클론 제작소가 등장하는 형태였다. 둘은 마지막 고비를 넘는 듯한 느낌으로 계단을 내려가, 마침내 문간에 퍼져 앉았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사는 현대인답다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일어나 움직인 것은 이러다 매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떠밀린 페란이었다. 그는 끙끙거리며 매니를 간이침대에 눕히고 세포를 체취해 작업에 들어간다. 심란하고 두려운 마음과는 별개로 몸이 척척 움직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페란 또한 불법적인 클론 생산이 몸에 익은 것이다.
십 년 전까지만 클론 하나를 생성하는 데에 일주일 이상이 걸렸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때에 이르러서야 페란은 긴 숨을 내쉬며 주저앉는다. 딱 기절하고 싶었다.
몇 년 전의 페란에게 ‘너는 범죄에 발을 들이고 사람도 죽여 보고 네 손으로 클론을 만들게 된단다.’ 라고 말해줬다면 그 농담 참 재미없네요, 하고 웃었을 것이다. 말했듯 페란은 소시민으로 사는 것이 평온하고 행복했을 사람이었기에.
그러나 이제 와서 후회한들 바뀌는 것은 없다. 페란은 냉장고에서 팩 형태의 식수를 꺼내고 빨대를 꽂아 매니에게 쥐여 주며 생각한다.
“물 좀 마셔 둬요. 한 시간 후에 바로 접합 수술을 할 거예요.”
기계의 소음과 물을 쪽쪽 빨아마시는 소리만이 한동안 들려왔다.
“팔을 이식하면, 생산한 클론은….”
“폐기해야지.”
“…….”
“클론 하나 건사하는 것도 다 돈이고 일인데 그럼 어떡해. 난 사람 하나 감당 못 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나요? 하고 물을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좋았으리라. 페란은 침울한 낯으로 시선을 내리깔았고, 매니는 번거롭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클론 생산 설비는 여기 있잖아.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그때그때 만들어서 쓰고 폐기하는 게 경제적이지. 안 그래?”
“… 그래요.”
“너 진짜 번거롭네.”
들으란 듯 깊은 한숨을 푹 내쉰 매니가 눈을 감았다. 안 잘 거니까 걱정하지 마, 하는 말이 뒤따랐다. 그가 누운 간이침대 옆에 무릎을 세우고 앉은 페란이 고개를 끄덕인다.
정작 깜빡 잠든 쪽은 페란이었다.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퓨즈가 나가듯 의식이 끊어진 것이라 기절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클론 제작 설비의 알림음이 그를 깨웠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한 시간이 지났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다리가 풀려 몇 번 비틀거린 끝에 일어났다. 배양액 속에는 매니가, 아니, 그의 클론이 들어 있다. 페란은 클론을 그라고 불러야 할지 그것이라고 불러야 할지에 대해 짧게 고민했다.
“…매니. 다 만들어졌어요.”
정말로 눈만 감고 쉬고 있었던 것인지, 매니는 잠기운이라고는 흔적도 없는 눈을 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클론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매니가 이식을 위해 팔만 잘라낸 후 폐기하기를 원했기에 클론을 깨워 의식을 확인하는 절차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배양액을 배출하고 클론을 수술대 위에 눕혀 팔을 절단한다. 과정을 간추려 문장으로 빚어내자니 이토록 간단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기실 페란에게 있어서도 아주 특별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몇 번이고 클론을 만들었고 폐기했다. 이 사회에서 클론은 도구였다. 이용하고 버리면 그만인, 비쌀 뿐인 도구.
페란은 코마 상태로 눈을 감고 있는 클론에게 호흡 보조기를 부착하고 팔을 잘라냈다. 잘라낸 팔은 보존액 속에 넣어 잠시 후 접합 수술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작업은 순식간에 끝났고 이제 클론을 폐기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약물을 주사기에 채운다. 업계에서는 이 과정을 안락사라고 불렀다. 페란은 자신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음을 알아챈다.
내가 왜 이러지? 몇 번이고 해 본 일이잖아. 설마 클론이 아는 얼굴이라서 이토록 마음이 불편한 건가? 그것이야말로 한심스럽기 그지없는 일임에도, 떨림은 멎지 않는다. 페란은 주사기를 오른손에 쥔 채 왼손으로 수술대를 붙잡고 깊이 심호흡했다. 의식적으로 진정하려 애쓴 것이 효과가 있어, 세 번의 호흡을 마치자 떨림이 잦아들었다. 거봐, 할 수 있어. 주사기를 찔러넣으면 끝이다. 페란이 마음을 굳게 먹고 클론의 동맥을 찾아 주삿바늘을 가져다대는 순간.
그는 수술대 위의 매니와 눈이 마주친다.
패닉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클론이 어째서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는 주사기를 든 손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뒷걸음질쳤다. 자신조차 근원을 모를 공포감이 페란을 덮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처음인 것도 아닌 주제에, 그랬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벌벌 떠는 페란의 등 뒤로 소리없이 매니가 다가와 섰다. 그는 페란을 뒤에서 끌어안듯 팔을 뻗어 떨리는 양손을 움키고 부드럽게 주사기를 받아든다. 소리도 없이 바늘이 살을 파고들었다. 호흡 보조기를 문 채 눈만 깜빡이던 매니의 클론은, 뜬 눈을 채 감지도 못하고 죽었다.
그 광경을 빠짐없이 지켜본 페란은 꺽꺽대며 제 겨드랑이 사이에서 뻗어나온 매니의 오른팔을 쥐었다. 공포와 혼란으로 인해 악력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했으나, 매니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다정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왜 그래, 뭐가 문제야?”
“매, 매니. 내가, 내가….”
매니는 한 팔로 페란을 부드럽게 돌려세운다. 색소가 옅고 선이 둥근 그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본 페란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떨었다. 매니는 페란의 인생이 뒤틀리는 길목마다 이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처음으로 사람의 얼굴을 발로 찼을 때, 얼굴이 가려진 누군가의 머리를 총으로 쏘았을 때, 그리고 지금, 자신의 얼굴을 한 클론을 안락사시킨 순간에….
매니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내 마음을 정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그렇게 떨 것 없잖아. 처음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 건지 모르겠네.”
페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면 가책을 덜 수 있게 뭐 하나 알려줄까? 아저씨, 있잖아. 쟤랑 나랑 다를 거 하나 없어. 나도 똑같거든.”
그 말을 이해하고 의미를 추측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페란은 숨을 멈춘다.
“그러니까, 나도 클론이란 말이야. 어때? 부품 갈아 끼우는 거랑 똑같지? 그러니까 그렇게 토할 것 같은 얼굴 집어치워.”
얼른 진정하란 말야, 접합 수술도 해야 할 것 아냐. 하며 투덜거리는 매니의 얼굴은 태연하기 그지없어, 페란이 자신이 무언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잠깐의 침묵. 그러나 달라지는 것이 없어 페란은 자신이 그의 말을 맞게 이해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잠시동안 석상처럼 굳은 채 말이 없었다.
매니가 기다림에 짜증을 느낄 때쯤, 페란은 어정쩡하게 들고 있던 팔을 내리고 입을 연다.
“수술 준비를 할까요, 매니.”
매니를 바라보는 페란의 눈은 맑고 명징하다. 마치 격랑이 지나간 후의 바다 혹은 무엇인가 무너진 후의 폐허처럼.
매니는 페란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지고 다시 구축되었음을 알았다. 언젠가의 매니 또한 이런 순간이 있었을까? 어떠한 선을 넘는 것이 두려워 괴로워하고, 그 선을 넘어버린 이후에 깨어진 자신을 관조하는 순간이. 눈 앞의 페르디난드 리겔은 마침내 마누엘 파비아노와 같게 될까?
그것을 점쳐 보는 일은 즐겁다. 그렇기에 매니는 페란의 인생을 내몰고 내몰아가며 그의 곁을 맴도는 것이다.
매니는 경쾌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얼른 팔 붙여 줘, 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