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하늘에 대한 단편
딱복2025-04-25 00:25

비가 그치니 바야흐로 봄이었다.

옥처럼 푸르른 하늘에 흩뿌려진 구름이 높은 바람에 떠밀려 서서히 흩어지고, 신무영은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빼문 채 홀로 말이 없다. 해가 저물려는지 마주본 하늘 끄트머리가 희미하게 주홍빛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신무영은 감성적인 사람이 못 되었으나 미의 개념을 아주 모르는 이 또한 아니었기에, 이 풍경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음을 인정한다. 

주위는 고요했다. 비가 그친 봄날의 선선한 오후이니 사람들이 붐빌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그랬다. 어쩌면 신무영이 새까맣게 빼입고 담배를 태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가 있었더라면 담배를 끄라고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그는 반남짓 피운 담배를 움켜쥐어 구겨버리며 의식적으로 생각의 물길을 끊었다.

모든 일이 시작된 이래로 십 년이나 되는 시간이 흘렀으나 신무영에게 십 년은 결코 긴 세월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일부가 절단되어 과거에 못박혀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신무영은 수차례 절단되고 파괴되었다. 자신의 조각들을 피처럼 흘리며 떠밀려 걸었다. 서른다섯이 되어 문득 되돌아보는 스물다섯 시절은 참으로 처참하다. 조각난 신무영의 파편이 곳곳에 흩뿌려진 채 떠나와야만 했던 그때. 상념은 막은 보람이라고는 없이 흘러가고 그는 불가항력적으로 은율을 생각한다.

아마도 하늘이 새파랗고 구름 한 점 없이 맑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눈이 꼭 이런 빛깔이었다. 서늘한 봄날에만 가끔 들여다볼 수 있는 하늘의 색. 아주 드물게 볼 수 있어서 항상 낯설게 느껴지는 색.

기실 신무영과 은율은 서로의 눈을 깊이 들여다볼만한 사이가 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좋게 쳐야 악우였고, 건조하게 말한다면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신무영의 집에 은율이 얹혀 살았던 시절이 있다지만, 그것이 그들이 친밀했다는 뜻이 되지는 못한다. 그들이 어떠한 이름으로 서로를 정의했더라면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있었을까? 알 수 없다. 

언제나 신무영에게는 은율보다 소중한 것이 있었고, 은율은 무언가를 돌아보는 법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들은 평행선처럼 서로를 스치는 일 없이 잠깐의 시간을 함께하다가 파도와 같은 일들에 떠밀려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이 작별은 영원할 것이다.

신무영은 이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까닭도 모르는 채로 그는 은율을 생각한다.

담배 한 개비를 다시 꺼내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자 쓴 맛이 났다. 웬일로 이렇게까지 담배가 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있는데 왜 계속 담배를 피우냐고 그는 물었었다. 언제였는지를 떠올리려면 기억을 한참 되짚어야 하는 옛일이었다. 그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를 몇 번인가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물을 사람은 이미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마음껏 오해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자신의 사이에 달콤하거나 부드러운 감정을 놓아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감각에 그리움 이상의 이름을 붙이지는 않으리라. 때로는 미상으로 두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상관없었다. 그의 감춘 속을 읽을 사람도 묻어둔 마음을 들춰내 놀릴 사람도 이제는 없다. 그러니 더더욱, 그리움만으로 놓아두어야 하는 부정형의 마음인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만 남아있는 사람이기에 이 그리움이 더욱 아름다워져 갈 것을 알면서도, 어쩔 도리도 없이.

어떠한 마음은 밀어낼 방법도 없이 새처럼 가슴에 깃든다. 신무영의 빈 가슴 속에 둥지를 튼 새는 흰 깃에 푸른 눈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담배를 벤치에 지져 끄고 일어난다. 벤치 아래의 우레탄 바닥에는 반만 남은 담배 두 개비가 동그마니 버려져 있었다. 다시 올려다본 하늘은 이제 붉어 푸른빛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흘러가 잊힐 것이라고, 신무영은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영영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