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락시아 님, 알고 계시는지요? 새끼 적부터 인간의 손을 탄 새는 야생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람 손을 벗어나서는, 결코….
그 말을 했던 것은 누구였던가. 말한 이는 부러 잊기로 마음먹어 지운 듯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말만큼은 도리어 잊히지 않는다.
그 까닭은 아마도 아이작의 오기 때문일 것이다. 예언과도 같은 그 말을 부정해 보이겠노라는 오기. 알 껍질을 손가락으로 집어 떼어내고 숟가락으로 물을 먹이며 키운 새라도 야생의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던 마음.
정말로 인간의 손에서 길러진 새는 새장 밖에서 살지 못할까? 그러나 그 작은 새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아이작은 답을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영영….
아타락시아라고도 불리는 소년 아이작은 양 손으로 싸늘하게 굳어진 새의 사체를 받쳐든 채 말이 없다. 흰 깃털이 사랑스러운 새는 목이 꺾인 채 죽었고, 손수 새의 목을 비튼 엔리케는 고집스럽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금발의 소년 황자는 자신의 손장난으로 그 작고 연약한 것이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콧잔등을 찡그리며, 엔리케는 쏘아붙인다.
“궁상맞게 주검을 쥐고 뭐 하는 짓이야? 그깟 짐승이 죽었다고 슬퍼하다니, 한심하긴!”
눈가가 젖고 나서야 아이작은 자신이 슬퍼하고 있음을 알았다. 어떠한 감정은 자각한 후에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탓으로, 그는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손바닥 위에 놓인 새의 주검은 너무나 가볍고도 부드러워, 마치 불면 흩어질 거품 같다. 아, 이 새는 정말로 죽어버린 것이구나. 새장 속에서 일생을 살다가, 인간의 장난스런 손짓에 죽어버린 것이로구나.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참는 아이작의 머리 위로 엔리케의 조롱이 쏟아졌다. 엔리케와 아이작은 본디 서로를 지독하게도 싫어하는 사이였다. 소년의 혀가 날카롭다.
“씨 모르는 자식이라 그런가 대가 약하군. 이러다 주저앉아 울음이라도 터트리겠어. 하하! 저 새가 뭐라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아이작이 죽은 새를 내팽겨치고 엔리케에게 달려듣 것은 그때였다. 일생을 엄격하게 훈육당한 소년의 어디에서 그러한 용맹이 발현된 것인지, 아이작은 엔리케의 멱살을 잡고 대뜸 주먹을 휘둘렀다. 엔리케가 비명을 지르고 신관들이 달려오는 것은 금방이었으나 이미 아이작은 엔리케의 뺨을 한 대 갈긴 이후였다.
“저 자식이 나를 때렸어! 저 천한 놈이!”
엔리케가 분노와 수치로 훌쩍거리기 시작하자 신관들은 그를 둘러싸고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작은 못박힌 듯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시선을 돌린다. 바닥에 버려진 죽은 새의 육신. 늙은 신관 하나가 다가와 아이작의 팔을 아플 정도로 세게 움켜쥐었다. 그는 이후에 찾아올 일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참을 수 없었던 것 뿐이었다.
교회의 지하에 감옥과도 같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은 제법 웃긴 일이다. 그곳은 교회법을 어긴 신관들을 교화하는 용도로 쓰였다. 아이작은 주르륵 늘어선 골방들 중 가장 깊고 추운 곳에 이레간 갇히게 되었다. 식사와 물은 죽지 않을만큼만 주어지고, 종일 신관들이 번을 서듯 돌아가며 그를 감시하고 훈육했다.
아이작은 자주 맞았고 종종 조롱조의 비난을 당했다. 그의 등을 부르틀 정도로 매질한 늙은 여신관은 말했다.
“신의 현신으로 태어나신 아타락시아 님께서 이토록 무도한 행위를 하셨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타락시아 님께 인간의 육신을 주신 벨마리아 류드밀러 부인께서는 비록 작고하셨으나 북부의 고귀한 핏줄. 그 피에 신의 권능을 받아 태어나신 분이 바로 아타락시아 님, 당신입니다.”
아이작은 그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너는 황후가 되었어야 할 여자가 홀로 낳은 씨 모르는 아이다. 황제는 우리와 합의하여 너를 이곳에 처넣고 길러내 쓰기로 마음먹었으니 너는 죽은 듯 살아 상징물의 용도를 다하여라.
기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이작은 어렸으나 위험할 정도로 영리했고, 황제와 교회 사이에 오간 합의와 자신의 쓰임새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작이 성장하며 머리칼이 완전히 하얀색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황제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으리라.
등가죽이 찢어진 듯 화끈거리는데도 아이작은 낮게 흐흐 웃었다. 열 살도 안 된 소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쓴 낯으로, 고통을 씹어 삼키면서.
이레가 지난 후, 아이작은 지상으로 나와 칠일만의 햇살을 마주했다. 하늘은 부서질 듯이 푸르고 날 적부터 자유로웠던 흰 새들이 그 창공을 질주하듯 날고 있었다. 아이작은 그 광경을 아주 낯선 것을 보듯 바라본다. 눈이 부시다는 생각을 했다.
지하에서의 이레간, 아이작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가슴 속에서는 기이할 정도의 복수심이 들끓고 있었으나 머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윽고 소년은 마음먹는다. 신의 상징물로 쓰기를 원한다면 도구가 되어 주겠노라고, 그리하여 이 땅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를 것이라고. 그의 손 위에 놓였던 새의 주검처럼 이 나라의 목을 비틀어 주겠다고….
소년은 성장한다. 강하고 아름다우며 교활하게.
황제는 병들어 미친지가 오래였다. 그는 황좌가 주는 무게에 홀려 온 세상의 땅을 다 지배하겠다는 열망에 불탔고,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젊었던 황제가 늙어 이윽고 병상에 누운 이후로도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엔리케 황태자는 아버지가 일으킨 전쟁을 계속해서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려 들었다.
아이작은 산 채로 신이라 불리게 되었다. 지혜롭고 고귀한 아타락시아! 별처럼 흰 머리칼에 신비로운 푸른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청년은 제국민의 사랑과 경외를 한 몸에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아이작은 더한 권력과 명분을 원했다. 황태자를 뛰어넘는 민중의 지지와 애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전쟁이 아이작의 발목을 잡았다. 전쟁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마련이고, 지친 민중이 신에게서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에 그랬다. 오랜 세월 신앙을 통해 지배력을 쌓아온 교단 내부조차 불안감에 휩싸일 정도였다.
아이작은 영리하게도 그 파도를 탔다. 자신의 입지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여론을 이용하여 제 몫이 될 기사단을 만들고 교회 소속의 장수 하나를 참모 역으로 앉혔다. 그가 자신을 내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나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론 경. 이건 불합리한 방식입니다.”
이 정도로 말이 통하지 않을 줄을 알았더라면 아론 경이 아닌 다른 장수를 꽂아넣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다.
아이작이 그 아름다운 얼굴 가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호소하다시피 말해도 아론 경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교단 내에서 신의 현신으로 추앙받는 아타락시아에게 이 이상의 권력과 발언권을 내주지 않겠노라는 심산이 훤했다. 그렇다고 해서 답답한 속이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작이 아무리 설득하려 애써도 아론 경은 뜻을 굽히지 않고 무조건적인 돌격을 주장했다. 시리우스 기사단의 단장이 아이작임에도 그를 향한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의 경험과 무력을 믿으십시오, 아타락시아 님. 설마 두려워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런 대답이나 돌아오는 판국에 아이작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었겠는가. 아론의 전술과 지휘를 따를수록 전투는 난항이었다. 때는 수성전의 한복판, 아이작은 성곽의 망루에 올라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성문은 반파되어 적의 정규군과 용병들이 성내로 침투하고 있었다. 아론 경이 직접 성문으로 내려가 병사들을 독려하였으나 꺾인 사기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수성은 실패하고 시리우스 기사단은 퇴각해야 할 것이다.
부서진 성문의 틈에 선 아론 경은 한동안 적병을 잘 막아내었다. 그의 발 아래로 순식간에 시체 다섯 구가 쌓였다. 멀리서 상황을 주시하던 적군의 지휘관이 저자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 금화 다섯 닢을 주겠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곧장 성문의 틈을 비집고 날 듯 달려오는 이가 있다.
아이작은 장신의 용병이 아론 경에게로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대경실색한 아론 경이 곧장 검을 휘둘렀으나, 그의 신장보다도 큰 대검을 제 몸처럼 다루는 정체불명의 용병을 당해내기에는 무리였다. 급소만을 가린 가죽 경갑을 걸친 그 용병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고도 정확한 움직임으로 아론 경을 몰아붙였다.
아론 경의 목이 떨어지는 것은 정확히 일곱 번의 공방이 오간 직후였다.
전장에 일순간 침묵이 내리깔렸다. 아론 경은 기사 작위를 노름으로 딴 자가 아니었다. 그런 그를 고작 일곱 차례의 공격 끝에 죽이다니. 적아를 가릴 것 없이 경악으로 굳어진 가운데, 장신의 용병이 쓰고 있던 투구가 바닥으로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론 경이 마지막 순간 휘두른 검 끝에 투구가 걸려 벗겨진 것이다.
아이작은 해를 등진 채로 이름 모를 용병의 맨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어리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젊었는데, 붉은 갈색의 머리칼과 녹색 눈이 햇살 아래 환했다. 아이작은 그의 얼굴 위에 흩뿌려진 흑설탕 색의 주근깨마저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직전까지만 해도 날붙이가 부딪치는 섬뜩한 소음과 고함, 비명 따위로 소란스러웠던 전장은 어느새 얼어붙은 듯 고요했다. 적갈색 머리칼을 지닌 용병이 세 걸음을 걸어간 후 허리를 숙여 제 투구를 주워들 때 갑옷이 내는 마찰음마저도 들릴 정도였다.
그가 고개를 들 때의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불길처럼 보인다고, 아이작은 생각한다. 흠집 가득한 가죽 갑옷 위로 가닥가닥 쏟아지는 붉은 머리칼은 햇살 아래서 타오르고 있었다.
이름 모를 용병이 문득 고개를 젖혀 성벽과 망루를 살피는 그 순간 아이작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해를 등지고 높은 곳에 선 탓에 그 용병은 아이작의 얼굴을 정확히 보지 못했으나, 아이작은 그의 녹색 눈동자 안에 도사린 새까만 동공마저도 정확히 보았다.
그 순간 아이작은 자신의 운명이 한 걸음을 걸어나가는 것을 느낀다. 거대한 톱니바퀴가 철컥 하고 들어맞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아래, 피로 물든 흙바닥에 서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불꽃 같은 머리칼을 지닌 저 여자. 죽음처럼 선명한 녹색 눈을 지닌 저 여자는 아이작의 삶에 들어와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아이작은 알 수 있었다.
다시 투구를 뒤집어써 얼굴을 가리고 대검을 추스른 용병은 어느새 소란해진 성내로 뛰어들어 피로 제 앞길을 닦는데, 아이작은 망루에 서서 가만하다.
머리 위로 새가 나는지 손바닥만한 그림자가 맴돌다가 멀어져갔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무언가가 시작되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