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강 한중간에 위치한 호중도는 본디 강의 이름을 따 백로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고 도시가 번영함에 따라 수많은 별칭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백로강의 진주. 하늘 아래의 월궁. 수면 위의 용궁.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섬. 그리고 등불의 섬.
등불의 섬. 그 별명에 걸맞게 백로도는 수십 수백만의 등불로 장식된 섬이었다. 그곳은 매일 밤이면 아름다운 주홍으로 달아올라 어두운 강 위에서 꽃잎처럼 반짝인다. 철저하게 인간의 쾌락을 위해 설계된, 화려하고도 지저분한 도시였다. 물 위로 드러난 땅덩어리가 버겁도록 켜켜이 쌓아올린 건물은 기루와 주루, 도박장이 대부분이었으며 대로를 벗어난 뒷골목에는 더욱 은밀하고 위험한 영업장이 가득했다.
류원청과 구영은 백로도에서 나고 자랐다.
그것은 그들이 제대로 된 부모를 가지지 못했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왔음을 의미했다. 원청과 영은 자신들이 가진 상처가 상처인 줄도 모르고 성장해, 필연적으로 껍질 같은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호중도의 낮은 아주 한산했기에 원청과 영은 어릴 적부터 서로를 알고 지내었다. 영이 섬 밖에서 온 부부의 손을 잡고 기대에 찬 얼굴로 떠나갔다가 돌아올 때에도, 원청이 조악하나마 여동생의 장례를 치를 때에도 그들은 서로를 지켜보았다. 상처를 핥고 끌어안아 줄 애정까지는 없어도 눈을 돌리지 않을 의리는 있었다. 사실 이 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전부 그랬다.
시궁쥐로 태어나 꽃으로 피는 곳. 그곳이 백로도였다. 영은 눈에 띄게 아름다운 청년이 되었다. 절색이라 말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홍등가로 흘러들어갔다. 영은 자신이 특출난 미인이라는 것을 어릴 적부터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각오도 두려움도 없이 작부의 처지를 받아들였다. 다른 꿈을 꾸기에는 건물 사이로 드러난 하늘이 너무 좁았다. 내일이 없되 부서질 듯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귀부인들과 고관대작의 여식들은 영을 위해서라면 남편과 아비의 권세도 바칠 것처럼 굴었고, 영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돈을 벌었다. 영은 스물다섯 무렵에 이미 섬을 떠나 살기에 충분한 돈을 벌었다.
그가 이 지독한 곳에 남아 버티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류원청.
영은 이유도 모르는 채로 그에게 휩쓸렸다. 언제부터인지조차 불분명한 감정이었으나 그에 붙은 이름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들은 친구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사이였다. 차라리 이 역겨운 섬에서의 삶을 헤쳐나가는 동지라면 모를까. 사랑에 빠질 이유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청은 소매치기 짓을 하던 소년 시절부터 영에게 있어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능글맞고, 과감했으며, 잘생기기는 했으나 다소 거친 인상을 풍겼다. 게다가 거친 삶에 익숙했고 지독한 상처를 품고 있었다.
그 점을 전부 포함해서 류원청이라는 사람이 좋았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수도 없이 산재해 있음에도, 무기력하게. 어쩔 도리도 없이.
영이 그 사랑을 명확하게 자각한 것은 스물넷이 되던 어느 눈 오는 밤이었다. 달이 거의 저물어 새벽에 가까운 시간. 영은 여자의 상대가 끝나고 두꺼운 털옷을 걸친 채 한산해진 거리를 걷는다. 싸락눈이 추적거리며 내려 옷자락을 적시고 있었다. 영은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음에도 피로한 낯을 의식적으로 감추었다.
그는 문득 길가 노점에 선 원청을 발견한다. 그는 영과 마찬가지로 밤을 샌 모양인지, 잠을 깨기 위해 진한 차를 한 잔 사서 들이켜고 있었다. 어스름이 번진 군청색의 하늘. 류원청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흰 입김. 평소라면 진작에 짧은 인사를 건넸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말을 걸 수 없었다. 그의 무표정한 옆얼굴은 고독해 보이기도 차분해 보이기도 했다. 영은 아주 낯선 이를 바라보듯이 원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스쳐지나가 버렸다.
그 순간 영의 마음 속에 일어난 것은 새벽처럼 푸르른 파란이었다. 평생을 강물만 보며 자라 바다의 형상 따위는 모르는데도, 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는 그것이 바다의 물결임을 알았다. 그 순간 영은 자신이 원청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또한 자신이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하게 될 것을 알았다. 그는 삼 년 간 가슴 속에 바다를 품고 살았다.
차마 말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원청은 영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의 마음 속에서 이미 당위명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데,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열 손가락을 다 써도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 그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상상을 할 때면 영은 거의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스물일곱의 여름. 영은 마침내 백로도를 떠날 마음을 먹었다. 사실 그것은 원청으로부터 떠나는 것이었다. 그를 향한 사랑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이었다. 그는 늙은 사공이 모는 조각배를 타고 백로강을 건너 뭍에 닿았다. 물에 둘러싸이지 않은 땅이 생소했다. 백로도에 비하면 산뜻할 정도로 건조한 공기도 신기했다. 이제 그를 잊어야지. 말도 안 되는 사랑 따위는 버려 두고 살아야지. 다짐한다.
그는 여태껏 모아온 돈으로 먼 도시의 기루를 샀다. 환락의 밤과 지루한 낮이 영원처럼 이어지는 일상을 보냈다. 영은 자신이 원청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서늘한 새벽마다 흩어지는 입김 사이로 그의 뒷모습을 생각하면서도, 겨울날 볼품없는 눈이 내리면 그의 옆얼굴을 떠올리면서도 그랬다.
이 년이 무상하게도 지나갔다. 영은 스물아홉이 되었고,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원청의 나이를 세어 보기를 몇 번이나 했다.
서른을 넘긴 그의 얼굴이 궁금했다. 살이 내려 얼굴이 갸름해졌을지, 머리칼은 짧게 자르거나 목덜미를 넘겨 길렀을지 따위의 사소한 것들을 하염없이 생각했다. 여전히 백로도에 머물러 살아가고 있을지, 혹은 자신처럼 그곳을 박차고 떠나 이름 모를 도시를 떠돌고 있는지를 헤아려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퍼내어 버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언제나 귓가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영에게 있어 사랑이란 지독한 것이었다. 그것은 결코 달콤하거나 포근하지 않았다. 그는 시덤불처럼 자라난 사랑에 수도 없이 상처입어가며 그것을 뜯어내 버리려고 시도했다. 그럼에도 사랑은 그늘진 마음으로부터 계속해서 자라난다. 손과 심장을 할퀴어 시뻘건 흉터를 만들어낸다. 핏방울은 흘러 바다로 간다. 불가항력이었다 .영은 사랑으로 인해 지쳐 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 겨울이 찾아왔다. 영은 원청으로 인해 겨울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으나 동시에 싫어하게 되었다. 멈추고 싶어도 그치지 않는 그리움으로 인함이었다. 홍등으로 가득한 처마 밑에 선 영은 흐린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무리가 진한 것이 곧 눈이 내릴 모양이었다.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눈이 나폴거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돌린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만나지 않는다면 곧 잊힐 것이라 생각했다. 도망치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의 마음은 아직도 백로도의 겨울날, 그 새벽에 묶여 있다.
때마침 사환이 올라와 그에게 고했다. 루주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내가 있다, 만류해도 막무가내여서 일단 보고를 올린다는 말에 영은 순식간에 가면을 뒤집어쓰고 싸늘한 코웃음을 쳤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며 허황된 상상을 한다. 거짓말처럼 원청이 저 아래에 서 있다면 어떨까. 긴 여행의 끝에 돌아온 사람처럼 가만히 서서 자신에게 짧은 미소나마 지어 준다면.
계단 아래, 기루의 뒷문에는 허름한 피풍의를 걸친 사내가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칼, 단단한 체구. 영은 원청을 생각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매몰차게 비웃었다. 그럴 리 없잖아. 그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그러나 사내가 숙였던 고개를 들자, 영은 계단참에 못박힌 듯 서서 말을 잊는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내가 두른 싸늘한 공기의 냄새가 시리도록 선명해 도저히 꿈 같지가 않았다.
원청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점점이 튄 옷을 걸친 채 영을 바라보며 얼핏 웃는다. 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 비틀거리며 계단을 마저 내려간다. 입술이 움직여 빚어낸 말은 본인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그 피… 네 거야?”
조금 더 근사한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좋으련만. 그러나 삼 년 만에 마주한 원청을 눈 앞에 두자 머릿속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느냐던가, 나를 만나러 왔다는 말이 사실이냐던가, 그런 질문들이 혀 밑에서 뒤엉켜 도리어 정돈된 질문이 나오질 않았다. 원청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한다.
“아니. 남의 피야.”
그는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백로도 시절부터 하던 정보상 일이 규모가 커졌다고, 그래서 직접 움직이고 피를 볼 일도 많아졌다고, 줄곧 네가 궁금했다고, 그래서 너를 만나러 왔다고.
모양 좋은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영은 가만히 바라본다. 그가 하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줄곧 내가 궁금했다고, 나를 만나러 왔다고. 웃음기가 어린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자, 쏴아아 하는 파랑의 소리가 들려온다.
“…어째서?”
영은 재차 물었다.
“어째서 나를 만나러 온 거야?”
원청의 눈이 미소로 가늘어졌다. 영은 기억 속에 있는 원청의 모습과 눈 앞에 있는 그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생각해 본다. 살이 조금 내린 것 같았다. 영의 예상대로 머리칼을 길렀다. 피풍의 아래의 옷은 검은 색 일색에 소매가 좁아 활동적이었다. 그는 조금 변했고, 수많은 점이 그대로였다. 원청의 눈가에 검은 머리칼이 흩어지자 그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어째서냐고?”
원청이 되물으며 한 걸음 다가온다. 그가 휘감고 있던 겨울 바람의 향이 물씬 끼쳐왔다. 영은 뒷걸음질치지 않으려 애썼다.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지 않으면 그를 끌어안을 것만 같았다. 고여 썩어가던 오랜 그리움이 터져나올까 두려웠다. 원청이 피에 젖은 손을 들어 영의 뺨을 감싸쥐었다. 그 순간 영은 탄식을 감추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문다. 피비린내가 지독했으나 상관없었다. 거칠고 단단한 엄지손가락이 핏자국을 남기며 자신의 눈가를 쓸자 격정으로 인해 무릎이 휘청거렸다. 원청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어째서일 것 같아?”
그는 짓궂은 수수께끼를 내듯 웃는데, 영은 눈 앞에 들이닥친 미지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줄곧 귓가에 들리던 파도 소리가 거세지고 있었다. 쏴아아, 쏴아아…. 파란이 가슴 속을 두드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임에도 바다의 형상을 알았듯, 원청의 질문에 대한 답도 알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