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너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그것이 그 순간 이레니우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첫 생각이었다. 가이우스가 이끌던 부대가 이방의 땅에서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비보는 대낮에 예고도 없이 찾아들었고, 거품 문 말을 타고 온 전령은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쿠리아 호스틸리아의 계단을 올랐었다. 그의 가죽 갑옷 아래로 피가 느리게 흐르던 모습까지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는가는 이상하게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평온을 가장했던가? 절망에 몸서리쳤던가? 아니면 공포에 질렸던가?
어쩌면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영혼의 절반이 찢겨나간 사람이 어떠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겠는가.
마치 장수가 자신의 갑옷과 준마를 신뢰하듯 이레니우스는 여지껏 자신의 이성과 합리를 신뢰해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레니우스는 로마의 전쟁터와 같은 정치판에서 지략과 술수로 살아남아 일가를 이룬 남자였다. 쉰을 넘긴 나이에도 그의 허리는 꼿꼿했으며 걸음걸이는 곧고 눈빛에는 예기가 넘쳤다. 그러나 가이우스의 소식을 듣고 난 이후의 그는 어떠한가. 누구든 이레니우스의 눈을 들여다본다면 그가 근본부터 변해 버렸음을 알 것이다. 이레니우스의 눈동자는 죽은 자의 그것처럼 어둡고 메말라 있다.
그럼에도, 이레니우스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가이우스의 생존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부여잡고 있다던가 하는 낙관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이레니우스는 낮밤을 잃고 침식을 잊었다. 도무스의 침실에 머물며 두문불출하였다. 주변에서는 제일가는 벗을 잃은 슬픔이 어떠하겠느냐며 동정하였으나 그 오인을 비웃을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자신이 그를 이토록이나 필요로 하고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었다.
해질녘이었다. 창문으로 쏟아져들어오는 주홍빛 낙조를 등지고 이레니우스는 자신의 그림자를 쏘아보았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영혼과 육신이 완전히 박리되었다면 이러할까.
전쟁터를 전전하는 것이 사명인 남자를 연인으로 둔 바, 이레니우스는 이전부터 몇 번이고 그의 전사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상상 속의 그 자신은 애도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느 갈래의 짐작도 현실과 같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슬픔도 괴로움도 분노도 없다. 가슴 속에서부터 바람 스치는 소리가 났다. 살갗 바로 밑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공허가 그를 메우고 있었다.
이레니우스는 통곡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눈물 대신 찬 그림자가 맺혔다. 그 순간 이레니우스는 다시금 후회한다.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를 향해 기울고 쏟아지던 마음들이 불가항력이었음을 알면서도 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를 사랑한 세월이 너무 길었다. 이레니우스라는 한 인간의 삶에서 가이우스를 분리해낼 수 없을 정도였다. 패착이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 패착으로 말미암아 이레니우스는 무너진다. 마침내 이레니우스는 자신이 울지 못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자신의 영혼이 찢겨나갔음을 확신한다.
이후의 삼 년. 이레니우스는 오래도록 헤매었다. 한 해는 그를 전쟁터로 보낸 이들에게 정치적인 복수를 감행하였다가 전장으로 향한 것이 가이우스 자신의 의지임을 결국 외면하지 못해 그만두었다. 한 해는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칩거했다. 한 해는 슬퍼하기 위해 애쓰며 보내었다. 그러나 슬픔이 느껴지지 않아 그만두었다. 머리가 전부 하얗게 세었다.
가이우스의 집에 찾아가지 않은지도 꼬박 삼 년이 지났다. 사람을 보내어 가내를 계속 돌보게 하면서도 정작 발길을 옮기지는 않았다. 그의 부재를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두려웠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어떻게 하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이레니우스는 마침내 죽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삶은 삼 년 전 그날에 이미 끝나 있었으므로, 당연했다.
준비나 계획 같은 것은 필요없었다. 날이 선 단도 하나면 충분했고, 이레니우스는 마음먹은 즉시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마침내 다가온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는 문득 웃는다. 내가 이렇게나 어리석고 낭만적인 짓을 저지를 줄이야! 칼날에 비치는 자신의 표정을 보니 다시 웃음이 터졌다. 꼬박 삼 년만의 웃음이다. 재회를 목전에 두니 마음이 들떠서 그런가보다, 하고 그는 다시 어리석은 생각을 한다.
그만큼이나 가이우스를 사랑했다. 그는 이레니우스를 이토록 어리석고 무모하게 만드는 유일한 남자였다.
그는 단도를 들어 목덜미에 누른다.
복도를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빗장으로 잠가 둔 문을 두드리는 다급한 목소리.
주인님! 하는 외침을 듣자마자 이레니우스는 단도를 내던지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 서슬에 목에 얕고 긴 실금이 갔으나 상관없다. 로마가 모두 불에 타도 방해하지 말라 이른 주인을 이토록 다급하게 불러젖힐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는 확신한다. 직감한다.
이레니우스는 자신의 발끝에서부터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영혼이라 불리는 무언가이리라고 생각한다.
토가에 발이 휘감겨 휘청거리며 그는 현관에 도착한다. 볼품없이 초췌한 남자가 문간에 서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 나의 영혼이여.
이제야 눈물이 나는 것은 이레니우스의 영혼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았기 때문이리라.
“자네는 정말 지독한 사람이야.”
이레니우스는 흐느끼며 쏘아붙인다.
“삼 년이나 늦은데다 개선 행진도 없군. 내게 주겠다던 월계관은 어디에 두고 온 건가?”
이런 무심한 남자는,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환히 웃는 낯으로 이레니우스는 후회한다. 그러나 기울어진 마음은 쏟아지고 가이우스를 향한 마음은 불가항력이니, 이레니우스는 감히 이 사랑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 후회한대도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