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 인형
딱복2025-04-25 00:18

소방은 거울 앞에 앉아 연지를 칠하고 머리를 틀어올린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일종의 의식이자 무장이었다. 먹으로 눈썹을 그리고 볼에 백분을 바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여자는 강하고 단단해진다. 오늘의 소방은 그 어느 날보다도 공들여 자신을 치장했다. 낙양의 최신 유행을 따른 올림머리는 한 떨기 모란과 같고, 거울 속의 여자는 양귀비처럼 화사하다. 그에게는 그만큼의 갑옷이 필요했다.

가마 안에 앉은 소방은 돌처럼 굳은 채 미동도 없다.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으나 머릿속은 점점 더 엉켜갈 따름이었다. 애당초 지금의 당가행 자체가 충동적인 결정이었으니 뒤따를 행동이 이성적일 수 있겠는가.

소방은 다만 그가 사무치게도 보고 싶을 뿐이었다.

 

매화꽃잎을 새긴 대문 앞에 가마가 멈추고 비단신에 감싸인 발이 포석을 밟았다. 무사들은 경계와 혐오, 적개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소방을 바라보았으나 그를 가로막지는 못했다. 소방은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곧장 장원을 가로지른다. 그의 방까지는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었다.

몇 개의 복도와 몇 개의 문을 지나 마침내 흰 장지문. 그 너머에는 그가 있으리라. 소방은 방 안의 풍경을 거의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가라앉은 공기와 은은한 다향, 그의 녹색 옷자락이 풍기는 아주 희미한 향기 같은 것을. 당장이라도 달려가 문을 열어젖히고 싶다. 그의 품에 뛰어들어 어린양을 부리며 달콤한 말들을 골라 속삭이고 싶다. 그런 스스로를 야멸차게 비웃으며 소방은 무겁게 걸었다. 양 손으로 문을 연다.

당군악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소방은 그가 그렇게 나오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나, 막상 예상대로의 홀대가 돌아오자 속이 뒤틀리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목소리가 뾰족하게 곤두섰다.

“가가, 이제는 어서 오란 말씀도 없으시군요?”

대답은 없었다. 소방은 다탁의 의자를 직접 빼 앉아 옷자락을 정리한다. 평정을 가장하며 의식적인 미소를 유지한다.

“하지만 소녀는 어쩔 수 없었어요. 가가도 아시잖아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당군악의 굳게 다물린 입술은 벌어질 기미조차 없어, 소방은 점차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아름답게 분칠한 얼굴 위 가면처럼 걸린 미소는 더욱 짙어지고, 명치 아래에서부터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그것이 공포임을 자각하자 곧장 분노가 치밀었다.

“당씨 성을 이은 사람들이 독랄하다더니 정말이로군요. 소녀가 일신의 구명을 위해 애썼을 뿐인데 이리 냉담하시다니요.”

남자의 침묵은 거의 부피를 가진 것만 같다. 소방은 이유 모를 분노와 신경질적인 공포에 휩싸여 평정을 잃었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입술을 벙긋거렸으나 빚어지는 말은 없었다. 당연한 노릇이었다. 소방은 그를 배신한 것이 맞았다. 그러니 이곳에 찾아와서는 안되었다. 매몰차게 떠나야만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도록 옷자락을 움켜쥐며.

“가가.”

여자는 도리 없는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애쓴다.

“이제는 저를 사랑하지 않으셔요?”

당군악이 고개를 들어 소방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은 그림자처럼 짙고 검어 그 어느 순간보다도 어두웠다.

“내가 어찌 그럴 수 있겠나.”

화장먹과 백분을 뭉개며 차오른 눈물이 볼을 가로지른다. 소방은 환희와 절망감을 동시에 감각한다. 불길과도 같은 격정. 자신이 무엇인가 아주 고귀한 것을 파괴했음을 알았을 때에 번개처럼 찾아드는 공포. 만족감, 자괴감, 압도적인 사랑…. 사랑!

공들인 화장을 엉망으로 만들며 여자는 한껏 미소짓는다. 이 남자는 나를 사랑한다. 어쩌면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소방이라는 여자는 당군악이라는 남자를 무너뜨리고 뒤흔든 끝에 완전히 취한 것이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방을 가로지른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큰 남자의 어깨를 한껏 끌어안으며 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사랑해요, 가가…!”

 

소방은 욕심이 많은 여자였다. 소녀 적에는 작은 새와 채색한 인형 따위를 가지고 싶어 몸이 달았다. 나이를 먹고 나서는 권력이 가지고 싶어졌다. 당군악을 만난 후에는 그를 원했다. 걸어온 진창을 뒤돌아보니 권력도 힘도 그의 발밑에 있다. 이 순간 그는 마침내 당군악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소방은 욕심이 많은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