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딱복2025-04-25 00:22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삶이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어찌 되었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전쟁으로 인한 폐허 위에서, 이전보다도 더욱 열렬하게.

나라 시카마루는 똑똑한 남자였기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자신이 죽도록 바빠졌어도 큰 불만을 제기할 의사가 없었다. 귀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나 어쨌거나 그는 해야 할 일을 미룰 정도의 게으름뱅이는 아니었다.

오늘의 임무는 모래마을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꽤 중요한 서류라 시카마루 정도 되는 인사에게 굳이 호송을 맡겼다는데, 귀찮기는 했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어 알겠다는 대답을 돌려주고야 말았다. 언제 또 거기까지 갔다가 돌아오지, 멀기도 하다, 모래마을….

그곳을 떠올리면 자연히 생각이 흘러가 닿는 이가 있다.

테마리, 그 여자.

첫인상은 그야말로 최악이었고 지금도 종종 자신을 놀려먹기는 하나 시카마루는 그가 싫지 않았다. 대화는 즐겁고 성격이 시원시원해 죽이 잘 맞는다. 모래마을로 향하며 시카마루는 생각한다. 안내역으로 나와주려나. 일을 마치고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할까.

그 생각을 하니 조금 덜 귀찮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를 마중나온 것은 테마리가 아니라 처음 보는 낯의 중급닌자였다. 약간 김이 샌 시카마루는 무례한 짓인 것을 알면서도 그의 면전에서 담배를 물었더랬다. 예상대로 모래마을에서의 임무는 순식간에 끝났다. 애초에 오가는 시간이 걸릴 뿐, 봉해 놓은 두루마리 하나만 건네고 돌아오는 것이니 거창할 것도 없었다.

역대 호카게들이 시카마루에게 무슨 가호라도 내린 것인지 오늘은 오후 시간이 통째로 빈다. 시카마루가 나루토 같은 성격이었다면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환호성이라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라 시카마루이기에 늘어져라 기지개만 켤 뿐이었다.

테마리를 만나지 못했으니 그냥 이대로 돌아가 낮잠이나 잘까 싶었다. 그를 찾으러 모래마을을 휘적휘적 돌아다니는 것은 유난스러운 짓 같아 그랬다. 보는 이 하나 없는데 이유도 모르게 머쓱한 기분이 들어, 시카마루는 뒷목을 쓱쓱 문지르며 담배 한 개비를 문다.

“어라, 시카마루!”

시카마루는 불을 붙이다 말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테마리가 길모퉁이에 서서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불이 붙은 담배를 그대로 신발 밑창에 비벼 끈 시카마루가 자각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테마리에게 향했다.

“어쩐 일이야, 시카마루? 임무라도 있었어?”

“아, 응. 뭐 좀 전해주는 간단한 일이었어.”

“그래? 그럼 이제 일 없어? 마침 점심시간인데 같이 밥 먹을까?”

“그러지 뭐.”

이후로 사소한 안부인사가 오가고, 둘은 테마리의 단골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정했다. 막 자리를 옮기려는데 저만치서 누군가가 테마리의 이름을 불렀다.

“테마리-!”

“다이마루?”

신나게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이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곧장 테마리에게 다가가 환한 낯으로 인사를 건네고, 테마리가 시카마루를 소개한 후에야 그에게도 인사한다.

“다이마루라고 한다.”

어째 까칠한 어조인데다가 마지못해 인사를 한다는 식의 태도라, 시카마루도 대강 이름만 가져다대고 마는 식으로 자기를 소개했다.

“시카마루.”

다이마루는 곧장 테마리에게 고개를 돌려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시커먼 남자가 자신에게 싹싹하게 구는 건 별로지만 그 시커먼 남자가 자기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는 것도 불쾌한 노릇이라, 시카마루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미안, 나 이미 시카마루랑 점심 먹으러 가기로 해서.”

“그럼 나도 같이 갈래. 괜찮지, 테마리? 어차피 자주 가는 덮밥집 가려는 거 아냐?”

“그러려고 하긴 했는데….”

테마리가 시카마루에게 허락을 구하듯 곁눈질했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 된다 잘라내는 것도 좀 그렇다. 치졸해 보이잖은가. 무엇보다 길바닥에 서서 실랑이하는 것도 귀찮았다. 시카마루는 짧게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세 사람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테마리가 단골이라던 덮밥집은 과연 맛있었으나, 시카마루는 이상하게도 덮밥 맛을 못 느끼고 있었다. 아니, 사실 이유가 확실하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그 이유란 시카마루와 테마리 사이에 끼어 앉아 완전히 테마리 방향으로 몸을 튼 채 식사 중인 다이마루였다.

시카마루와 다이마루가 초면이니 둘 모두를 아는 사이인 테마리가 가운데에 앉는 것이 대화에 적절할 것인데 굳이 가운데를 정해 앉은 것 하며, 시카마루에게서 등을 돌리고 테마리만 바라보는 것도 무례한 일이었다. 굳이 화를 낼 일까지는 아니라지만 어이없는 웃음이 픽픽 새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빈 덮밥 그릇을 앞에 놓고 젓가락을 문 채 다이마루의 옆얼굴이나 멀거니 바라보던 시카마루는 문득 깨닫는다.

아, 이 남자. 저 여자를 좋아하는군.

아직 앳된 청년의 뺨은 상기되어 있고 테마리를 향한 눈길은 따스하다. 다이마루는 테마리에게 둘의 어린 시절 이야기며 테마리가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테마리가 이따금 웃어 줄 때마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행복해 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시카마루는 문득 가슴에 뜨끔한 통증을 느낀다.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당혹감과 의아함, 유치한 소외감과 아직 부정확하고 뜨거우며 날카로운 감정들까지. 그 열기가 질투라는 것을 깨달은 시카마루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다. 아랫입술을 감쳐문다.

“…그래서 말이야, 밥 다 먹으면 네가 좋아하는 찻집에 당고 먹으러 갈까?”

좋아하는 찻집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테마리와는 그럭저럭 꽤 오래 알고 지냈고 이야기도 제법 나누어 봤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가 좋아하는 식당이나 찻집, 가게 따위는 전혀 몰랐다. 찰나에 맹렬한 열패감이 들었다.

“시카마루, 왜 그래? 배 아파?”

낯빛이 얼마나 어두워진 것인지, 테마리가 다이마루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기울여 그를 살폈다. 시카마루는 안색을 갈무리하려 애쓰며 웃어 보인다.

“아니,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좀.”

“과식이라도 한 거 아니지?”

“아니야, 아니야.”

둘의 짧은 대화를 지켜보던 다이마루가 다소 공격적인 어투로 끼어들었다.

“뭐야, 소화가 안 되는 거야? 약골이구만.”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시비라, 시카마루는 오히려 우스워지고 말았다. 무언가 받아치려 입을 떼는데, 다이마루가 선수를 친다.

“그러니까 테마리, 저딴 놈보다야 내가 훨씬 괜찮잖-”

“다이마루.”

본인도 아닌 시카마루까지 어깨를 움츠릴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였다. 테마리는 부채를 펼쳐들고 섰을 때와 꼭 같은 얼굴을 하고 말을 잇는다.

“넌 내게 있어 좋은 소꿉친구야. 하지만 방금은 선을 넘었어. 무례하게 굴지 마. 그리고 난 네 마음을 받아줄 생각 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어.”

“어… 어째서야 테마리! 달리 좋아하는 녀석이라도 있는 거야?”

테마리의 눈에서 냉기가 걷힌다. 잠깐 망설이는 듯 했던 그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 신경 쓰이는 녀석이라면 있어. 머리는 좋은데 귀찮단 소릴 입에 달고 사는 녀석이라던가.”

어쩌다보니 한 청년의 순정이 박살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구경하게 된 시카마루가 반사적으로 다이마루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예토전생으로 부활한 시체처럼 창백해져 한참을 굳어 있다가, 간신히 ‘실례할게’ 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식당을 뛰쳐나갔다. 시카마루는 식당에 손님이 별로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야 만다. 이 비극의 등장인물이 된 것도 부담스러운데 관객이 있었더라면 그도 도망치고 싶어졌을 것이다.

점원들마저 숨죽이고 있기에 식당은 무덤처럼 고요했다. 시카마루가 정적을 깬다.

“이만 일어날까? 나 다 먹었어.”

“그래, 그러자….”

식당을 벗어나 마을 외곽으로 걷는 내내 둘은 말이 없었다. 몰아쳤던 당혹스러움이 가시자 생각은 어쩔 수 없이 테마리의 ‘신경 쓰이는 녀석’에게로 가 닿았다. 다시 가슴이 뜨끔하다. 이번에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질투다. 저만치 모래마을의 출구가 보이고, 둘은 이제 곧 헤어져야 할 것인데, 시카마루는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고야 만다.

“있잖아, 테마리.”

“왜?”

발걸음은 느려지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모래먼지 저편으로 어렴풋이 노을이 붉고 바람이 불어와 테마리의 금빛 머리카락을 흔들고 있었다. 시카마루는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신경 쓰인다고 한 사람, 누구야?”

잠시 시카마루를 응시하던 테마리가 씩 웃었다. 마치 그를 놀리듯이, 짓궂은 장난을 치는 사람처럼.

“대답하기 귀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