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미망
딱복2025-04-25 00:08

이 선생은 동리 꼬마애들에게 한글과 한자 그리고 간단한 셈법을 가르치는 젊은 남자였다. 머리를 짧게 깎고 항시 흰 저고리에 검은 두루마기를 입는 그는 강원도 산촌에 터를 잡아 사는 사람답지 않게 반듯하고 준수했다. 언젠가 이장이 넌지시 제 딸애와의 혼사를 권하자 그는 ‘아내가 다섯 해 전 열병으로 죽었습니다.’하고 담담하게 대답하여 그의 말문을 막았더랬다. 마을의 몇 없는 젊은 처녀애들은 훤칠하게 키가 크고 무던히 잘생긴 그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저들끼리 웃어대곤 했다. 그네들은 이 선생의 이름이 휘명이고 나이가 스물여덟인 점까지도 마음에 든다며, 자신은 재취 자리라도 괜찮다는 말을 겁없이 해대었다.

그러나 이 선생의 반닫이장 속 단출한 옷가지 사이에 화사한 개나리색 저고리와 연분홍 치마가 끼어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 옷이 죽은 아내의 것이란 사실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 선생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꺼내어 한나절간 널어두며, 천이 삭지 않게 빛과 바람을 쏘이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일러주었다. 그에게 글을 배우는 아이들 중 제법 머리가 굵어진 사내애는 그 광경이 죽은 왕의 영혼을 불러오려 호복하는 것과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호복이란 의식을 사내애에게 가르쳐 준 사람도 이 선생이었다. 궁의 처마 위에서 이미 죽은 왕의 옷을 흔드는 내시에 대한 심상은 이상하게도 봄빛의 명주로 남았다. 좁은 앞뜰에 나부끼는 화사한 한 벌의 치마저고리. 그것을 꺼내어 너는 이 선생의 옆얼굴은 어떠했던가. 소년은 이 선생이 옷을 쓰다듬는 손길로부터 오래되어 앙금으로 가라앉은 애상에 대하여 배웠다.

이 선생은 욕심이 없는 남자였다.

한학에 능통한 것은 기본이요 신식 교육까지 받은 것이 분명한 남자가 산골에 박혀 살고 있으니 본디 욕심이 없는 사람이겠거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두고 보면 그 무욕함의 정도는 웃고 넘길 수준이 못 되었다. 옷은 깨끗하였으나 자세히 보면 겉감이 보드랍게 닳아 있었고, 사는 집도 정갈하기는 하되 곧 허물어질 듯 낡았다. 이사를 들어올 적에 챙겨온 짐이라고는 보따리 하나가 전부인 사람이 식사조차 간소했는데, 그 거칠고 범박한 밥상도 때에 맞추어 먹는 일이 드물었다. 그의 이러한 면면을 보고 동네 아낙들은 죽으려 작정한 사람 같다며 혀를 찼다. 말을 들어보니 마누라를 먼저 보내었다는데, 어디 삶이 삶 같겠느냐고. 곁붙이를 일찍이 보낸 사람은 저리되는 법이라고. 젊은 남자가 참으로 박복하다고….

그럼에도 이 선생은 그늘진 산속 고인 못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해가 지면 자리를 펴고 잠들어 해가 뜨면 일어나고, 아이들을 가르쳐 끼니를 해결하며, 마치 하늘이 무너져 자신을 짓눌러 죽이기를 기대하는 사람처럼 고요히 삭아갔다. 마을 아이들은 그의 두루마기 자락을 쥐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며 나랏님 살았다던 경성은 어떠한지를 묻고, 그러다가도 이따금 선생님의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느냐를 또 물었다.

그는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다만 웃으며 대답한다. 그이는 웃는 것이 가을 국화처럼 풍요로운 사람이었다고. 목소리는 여름 장맛비처럼 또렷했다고. 자신은 그의 강한 마음과 환한 눈과 동그란 볼을 사랑했다고. 단 한 번도 아내의 이름이며 생김새를 말하는 법 없이, 마치 기억의 마모를 두려워하듯 추상적인 사랑의 단편만을 소중히 꺼내어 입에 담으며.

허리춤에도 못 오는 아이들에게 그러한 사랑의 묘사는 아직 어려운 것이라, 동리 꼬마들은 이내 와아 소리를 지르며 구불진 비탈을 뛰어내려갔다. 이 선생은 열셋이 되어 제법 누나 노릇을 하게 된 분이에게 오늘이 무슨 날이니, 하고 물었다. 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선생님 못 들으셨어요?”

“무얼?”

“지주댁 첫째 도련님이 돌아오신대요. 지주 어르신이 오늘내일하셔서 얼굴을 뵙겠다고요.”

이 선생은 그제야 지주인 신씨 어르신이 와병 중이라는 것과그 병세가 제법 심각하여 동경에서 유학 중이던 장자가 귀국하게 되었다던 일을 기억해냈다. 온 마을에 퍼진 이야기라 들어는 두었으나 기억 한 켠에 밀어놓고 그대로 잊은 모양이다. 이상한 일이다. 아내가 죽기 전에 배워둔 모든 학문은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그가 떠나간 이후의 일들은 삶의 변두리를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실바람이 으레 그러하듯이, 무게감이라고는 없이.

눈을 내리뜨는 것으로 상념을 갈음한 이 선생이 분이에게 말한다.

“아아, 이제야 기억이 났다. 너도 가보지 그러니. 지주댁에서 잔치를 벌인다지 않던. 너 좋아하는 떡도 올라오겠다.”

선생님은요, 하고 그를 꼭 데려가려던 분이는 몇 번 만류하자 어쩔 수 없이 언덕길을 내려갔다. 이 선생은 방 안으로 돌아가 책을 펼치고 앉는다. 시집이었다. 그는 학생 시절에는 시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아내와 함께한 이후로는 시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사랑한 세상을 자신도 보고 싶어서 그랬었다.

비 개인 강둑에 풀빛은 더욱 새로운데, 남포에는 이별의 슬픈 노래 그칠 길이 없구나.

그가 사랑했던 세상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의 흔적이 필요했다.

시를 읽다 창 밖을 보니 해가 저물어 있었다. 이 선생은 저녁을 거른 채 얼굴을 씻고 잠자리에 든다. 꿈에는 아내가 나와 주질 않아, 울지 못했다. 새벽빛이 눈가를 두드려 잠에서 깨었다. 아침을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아 또 식사를 거른다. 두 끼를 내리 굶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가 없는 세상에는 이상한 일들만 일어났다. 슬프지 않아서 더욱 이상하였다.

어제가 마을 잔치였으니 자연히 오늘도 수업을 못 할 것이다. 하루를 놀면 이틀을 또 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산촌 아이들이 배워 무엇하겠느냐는 의식이 만연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예전의 이 선생이라면 안타깝게 여겼으리라. 신식 공부를 해서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든가, 계몽 운동을 할 것이라든가, 허울좋은 말들이 가슴을 가득 부풀려 놓았던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다. 사랑을 불씨로 삼아 무언가를 힘껏 해나갈 힘이 남아 있던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다.

이 선생은 오전 내내 마루에 허리를 세우고 앉아 떠나간 것들과 떠나갈 것들에 대해 생각하였다. 불가항력이었다.

 점심 무렵이 되자 언덕 아래가 소란하였다. 일어서 담장 너머로 내려다보니, 어린아이들이 참새처럼 짹짹거리며 산아래 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언덕 위에 집이라고는 이 선생이 사는 두 칸 초가집 뿐이니 아이들은 그를 보러 오는 것이리라. 인사를 하려 손을 드는데 아이들을 뒤따라오는 장정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 선생은 초가집 사립문을 미리 열어놓았고, 그와 동년배로 보이는 장정은 문간에 서서 인사를 건넸다.

“신우혁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이 선생은 고개 숙여 인사를 받으며 아이들이 제각기 그를 소개하는 것을 들었다. 동경에 유학을 갔다던 신가 첫째 도련님이 이 남자로구나 생각하며 실례되지 않을 정도로만 그를 살펴본다. 장신인 이 선생보다 손가락 두어개는 더 큰 거구에 인상이 강인한 그는, 말씨가 아주 깍듯하였다. 자신이 무섭도록 크고 강한 것을 알아 부러 더욱 조심하는 기색이 있었다.

“이휘명이라 합니다.”

그리고는 더는 자신을 소개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야 만다.

“애들에게 들으니 공부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시라 해서 인사를 드릴 겸 왔습니다.”

제법 지주댁 장자다운 말이었다. 이 선생은 간단한 글과 셈만 가르친다 겸양을 했으나, 저들끼리 속닥속닥 수다를 떨던 아이 하나가 자랑스레 ‘선생님은 서양 글자도 읽어요!’하고 자랑을 하고야 말았다. 신우혁의 눈에 이채가 돈다.

“신식 공부를 하셨다더니 이거 대단하신 분이었군요.”

 이 선생은 약한 낭패감을 느낀다. 이 산자락에서 웅크려 살기로 맘먹은 이유 중에서는 눈에 띄는 것에 대한 피로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우혁이 그 속을 알 리 없으니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나는 영국 소설을 좋아합니다. 선생도 영문학을 읽습니까?”

“… 셰익스피어를.”

좋아했습니다. 과거형의 문장을 뱉어 놓고 이 선생은 후회한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던 사람은 이 선생이 아니었다. 그는 아내를 위해 직접 햄릿의 일부와 몇 편의 소네트를 번역했었고, 그것은 이휘명의 세상에서 유일한 사랑시로 남았다. 괜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이라 부르기에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그 기억들은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지고 있어, 이 선생의 껍질을 찢고 제멋대로 튀어나온다.

어른들간의 대화가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아이들은 하나둘 짝지어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조잘거리는 목소리들이 멀어지고, 눈 앞의 사내는 흥미로운 주제로 대화할 사람이 생긴 것이 반가운지 퍽 살갑게 말을 붙여온다.

“그래요? 어떤 글이 마음에 들덥니까. 나는 햄릿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소네트도 조금 읽지요. 안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만.”

신우혁은 그런 이야기를 하며 웃는데 이휘명은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마주선 남자의 낯빛이 점차 어두워지는 것을, 신우혁은 기민하게 감지했다.

“… 내가 무언가 실례되는 이야기를 했습니까, 선생? 안색이 좋지 않군요.”

이러한 순간마다 숨이 막힌다고, 이 선생은 생각한다. 자신을 뒤덮은 슬픔의 그림자에 압도되어 눈 앞의 작은 선의에 오히려 괴로워하는 자신이 얼마나 볼품없는지를 자각하자 새삼스러운 비참함이 일었다.

“아니오.”

잠시간의 침묵.

“죽은 내자가 셰익스피어를 좋아했습니다.”

스스로 빚어 내뱉은 말의 무게에 짓눌린 채로 이휘명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두어 번 입술을 달싹이고, 사립문 너머에 선 신우혁은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 신우혁의 표정을 해석할 수 없어 더욱 조바심이 났다.

대뜸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 죄송하다고 이 선생이 사과를 하려는데, 신우혁이 먼저 가볍게 목례했다.

“슬픈 기억을 상기시킨 모양입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 선생이 말을 잊고 신우혁을 바라보자 그는 다소 머쓱해하는 기색으로 말을 잇는다.

“초면에 너무 친밀한 체 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고향에서 책 이야기를 할 사람을 만났다 생각하니 반가워 마음이 앞선 것 같습니다. 실례했어요.”

그 사려깊은 말에 도리어 부끄러워진 것은 이 선생 쪽이었다. 그가 드물게도 손까지 내저어가며 무어라 말들을 주워섬기려는데 신우혁은 벌써 손에 들고 있던 모자를 쓰며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는 신우혁에게 이 선생이 불쑥 내민 화두라곤 이러한 것이었다.

“... 혹시 댁에 소네트 시집이 있습니까?”

 

*정지상의 송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