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소네트
딱복2025-04-25 00:12

문고판 셰익스피어 소네트집이 좌상 위에 정물처럼 놓였다. 

고요한 한낮. 두 남자는 책을 사이에 두고 한동안 말이 없다. 응달진 초가집은 낮에도 공기가 서늘했기에 이 선생이 내온 더운물은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그는 낡은 잔에 물을 담아 내며 세간이 낡아 면구스럽단 말을 했었다. 눈길을 헤치고 오느라 젖은 신우혁의 양장 바짓단이 뻣뻣하게 말라가는데, 이 선생은 관뚜껑을 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책을 펼친다. 종이가 마찰하는 섬뜩한 소음. 

목차도 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넘긴 책장은 그의 무성의를 꾸짖듯 대번에 가장 괴로운 구절을 내놓았다. 종이에 심장을 베이기라도 한 듯 가슴이 시리다가, 이내 온 몸이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마냥 고통스러워졌다.

내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 수 있을까.*

동경에서 보내었던 스물한 살의 여름. 하늘을 찢어발기던 일광 아래서 이휘명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 첫 구절을 이렇게 옮겼더랬다. 아내는 영어에 능통한 여자였으나 굳이 이휘명에게 번역을 졸랐고, 이휘명은 그것이 너무나 기뻐 어쩔 줄을 몰랐었다.

열병 같은 사랑이었다, 고. 그래서 열병이 그를 앗아간 모양이라고. 이 선생은 회상한다. 그의 평생치의 빛과 불은 모두 과거에 묶였고 이어질 생에 남은 것은 재 뿐이었다.

아내를 먼저 보낸 이래로 이 선생은 홀로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았다. 그럴 적이면 그의 눈은 안개가 감도는 산골짜기처럼 어두워지곤 했다. 신우혁은 이 선생의 명징했던 시선이 점차 흐려지고 깊어지는 과정을 풍경 보듯 본다. 이 선생이 문득 읊조렸다.

“거센 바람이 오월의 고운 꽃망울들을 흔들고, 우리에게 허락된 여름은 너무나 짧구나….”

신우혁은 그것이 오랜 시간을 들여 옮겨낸 구절임을 단번에 알았다. 단어와 단어 사이마다 오래된 슬픔과 깊어가는 그리움이 맺혀 있기에 그랬다. 눈 앞에 앉은 남자는 과거에 눈을 두고 현재를 부표처럼 떠돈다. 마치 상실을 유약 삼아 구워낸 흰 도자기 같다. 신우혁은 마주앉은 이의 얼굴 위로 몇 가지 비유를 더 덧대 보다가 의식적으로 생각을 끊어냈다.

“직접 번역하신 모양입니다.”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지요?”

이 선생이 미미하게 웃어 보이자 신우혁이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들은 번역 중 가장 곱고 서정적이어서 한 말입니다.”

웃음이 조금 선명해졌다. 종이를 바른 창문으로부터 창백한 겨울볕이 쏟아지고 이 선생의 입매에 둥근 우물이 패이면 신우혁의 시선이 그곳에 닿았다가 떨어진다. 눈길을 억지로 잡아다 떼어내는 것에 가깝다.

“제게 굳이 해달라 졸라 골머리를 썩어 가며 번역을 했었습니다. 지금 하라면 이리 못 할 겁니다.”

문장에는 주어가 없었으나 누구를 일컫는가는 명확했다. 말을 맺음과 동시에 미소가 사그라들고 이 선생의 눈은 다시 기억 속을 향한다. 신우혁은 이 두 번째의 만남에서 그가 유품으로 존재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이휘명의 지난 시간은 떠난 이에게 오롯이 속하였고 그의 생각과 말들은 사랑을 중심으로 직조되어 있다. 그에게서 죽은 아내를 걷어낸다면 빛바랜 껍질밖에는 남지 않을 것이다.

신우혁의 맞은편에 앉아 소네트집을 손에 쥔 이 선생은 옛이야기를 할 때에만 사람 같았다. 눈꺼풀을 내리깔고 아득한 낯을 하면, 그는 순식간에 구름이나 안개 혹은 싸락눈이 된다.

짧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둘은 고요함 속에서 오후를 보내었다. 이 선생은 시를 읽으며 추억에 헤메었고 신우혁은 그런 그의 얼굴을 가만히 뜯어본다. 짙은 눈썹이며 단정한 눈매, 높은 이마 위로 떨어져 입술산에 맺히는 빛 같은 것을. 시간은 뒷마당에서 서성이고, 해가 기울 무렵이 되어서야 이 선생은 책을 덮었다. 창에 걸러진 햇살이 그의 옆얼굴에 엷고 푸른 그림자를 덧씌운다. 신우혁은 그 광경 또한 말없이 바라보았다. 긴 정적 끝에 그가 가벼운 투로 말한다.

“책만 드리고 돌아갈 걸 그랬습니다. 즐거이 읽는 것을 제가 방해한 건 아니겠지요?”

그 부름에 이 선생은 현재로 되돌아온다. 신우혁이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탓에, 초점이 또렷이 맞추어지는 눈동자며 급히 예의를 갖추는 표정 따위가 전부 들여다보였다. 소리내어 웃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아, 제가 손님을 앞에 두고 실례를….”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은 또 의외로웠다. 수묵화마냥 무슨 일에도 담담한 낯으로 일관할 것 같은 사람이, 이런 얼굴도 있구나. 신우혁은 자각도 없이 들뜨고야 만다.

“실례랄 것 없습니다. 저를 오후 내내 버려둔 것이 정히 신경쓰이시면 종종 이야기라도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아버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 때까지 머물 예정이라서요, 하며 신우혁이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그는 아예 휴학계를 내고 왔다느니, 자신이 한학 공부를 하다가 뒤늦게 유학길에 오른 만학도라느니 하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몇 마디 얹는다. 이 선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가 동경제대 문학부에 재학 중이란 말에는 조금 웃었다.

“그러면 우혁 씨가 제 후배로군요.”

신우혁이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뜰만한 말이었다. 이 선생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야 일찍이 눈치챘다지만 동경제대 문학부 출신이라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기에 그랬다. 선생 같은 재사가 어찌 이런 산골에서 초라하게 지내느냔 질문이 목젖까지 치받아 올랐으나 신우혁은 그것을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묻지 않아도 답을 알 수 있는 질문이기에 그러했다. 이휘명에게 있어 유일하게 뚜렷한 한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동경제대 이야기가 잠시 오가고, 신우혁은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이 선생의 집을 나왔다. 다음에는 다른 책을 몇 권 가져오겠다는 약속을 한 뒤였다. 사립문을 나서 언덕길을 내려가던 와중에야 그는 자신이 드물게도 말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친구가 될만한 이를 고향에서 만나니 기분이 좋은 것인가 하고 복기하기를 잠시. 그의 낯에 의문과 당혹이 점차 번져갔다. 이휘명이라는 남자의 구름 같은 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까닭이었다.

산아래 언덕에 웅크린 외딴 초가로부터 출발해 마을 한중간의 번듯한 기와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신우혁은 계속해서 이 선생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어째서 그를 이리도 떠올리는가의 까닭도 모른 채로, 하염없이 그리했다. 겨울볕 아래 희던 볼과 눈썹뼈 아래로 지던 그림자 따위의 단편적인 심상은 이내 그를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를 유폐한 죄인에 비유하는 시적인 감상으로 이어졌다. 아우 준혁과 함께 저녁상을 놓고 앉아서도 대화의 주제는 자연히 외따로 떨어져 홀로 사는 선비 같은 남자에 대한 신변잡기가 된다. 준혁은 우혁이 경성과 동경에서 유학하는 내내 집안은 물론 동리 전체를 맡아 돌본 덕에 발이 넓고 인망도 좋았다. 황소처럼 큰 체격에 겁먹었던 이들도 그의 성품을 겪으면 금세 정을 붙이곤 했다. 준혁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염려를 한다.

“그분이 식사는 때맞추어 챙기는지 모르겠어. 오며가며 전해듣기로는 굶기를 오히려 밥먹듯 한다던데….”

애들을 돌보고 글공부를 시켜 주시는 감사한 분이니 무어라도 챙겨 드리고 싶다, 농번기에는 동리 애들 전부를 먹이고 재우기를 며칠간 내리 하더라, 하는 말들이 뒤를 이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우혁이 씹던 것을 다 삼키고 나서야 대답을 했다.

“그러면 모레쯤 내가 식사거리나 가지고 찾아뵈랴? 그렇잖아도 책 몇 권을 가지고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아 놨거든.”

“그, 그래? 그럼 좋겠다. 형이 고향에서도 친구를 사귀니 잘 되었어.”

헤헤, 하고 웃는 준혁에게 아이 둘 있는 아비 얼굴이 그게 무어냐며 퉁박을 준 신우혁은, 그러나 흐뭇한 낯을 하고 있다. 벌써부터 이 선생의 목전에 더운 밥이며 구색 갖춘 찬을 놓아줄 생각을 한 탓이다. 뼈대가 굵고 키가 큰 것에 비해서는 마른 듯한 얼굴을 회상하자, 보고도 의식하지 않아 잠시 잊어 두었던 뼈대 도드라진 손목과 각진 턱이 이어 떠올랐다. 신우혁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이 선생이 어떤 찬을 좋아할까에 대해 골몰하였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막연하기만 한 상상이었다. 

밥상을 물리고 나서도, 이부자리를 펼치고 누운 후에도, 신우혁은 이 선생에 대한 사소한 생각들에 매여 있었다. 그의 식성이 궁금하다가, 동경에서 유학을 했다면 그때엔 양장을 입었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다가, 다음 번 만남에서는 제대 시절 구락부 활동을 했었는지를 물어보아야지 마음을 먹고, 그와 나누고 싶은 글들을 꼽아 보고. 부인이 셰익스피어를 좋아했다면 그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지가 궁금해져 그것도 물을까 고민하고.

별처럼 수없는 궁금증은 또다시 무수한 자문자답을 거쳐 하나의 정답으로 귀결된다.

신우혁은 이휘명에게 이끌리고 있다.

곤란한 일이어야 마땅한데, 그것이 싫지 않다는 점이야말로 참으로 곤란했다. 신우혁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장에 고인 어둠을 쏘아본다. 그러자 이 선생의 새까맣던 눈동자가 아른아른 떠올랐다. 신우혁은 오래지 않아 승복한다.

이 마음은 언젠가 사랑이 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것을 인정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우혁은 본디 망설임이 긴 사람이 아니었고, 생각의 끝에 뜻을 정하면 바로 행하는 성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튿날 첫닭이 울 때에 일어나 동경에서부터 가지고 돌아온 소설책이며 시집을 뒤졌다. 책을 고르는 과정은 즐거웠으나 남의 집에 찾아가도 폐가 되지 않을 시간까지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고역이었다. 약속해둔 방문일은 내일이었지만, 책만 전해 주고 돌아오는 정도라면 괜찮으리라. 밤사이 눈이 내려 길이 희고 깨끗했다. 그는 찬 공기를 가르며 산아래 언덕을 올라간다. 이 선생이 마루에서 무언가를 하다가 벌떡 일어나 그를 맞았다.

“우혁 씨, 어쩐 일로…?”

신우혁은 그제야 자신이 풋내기 소년처럼 굴었다는 자각을 하고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그는 얼굴을 붉히거나 말을 더듬는 대신 팔에 끼고 있던 책 몇 권을 추슬러 보이는 것을 택했다.

“지난밤에 책을 읽고 있자니 이 선생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사실, 신우혁은 이 선생에게 소설을 권하고 싶었다. 그가 이 선생을 생각하며 추린 시집을 건네는 것이 은밀한 구애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그러나….

“바이런의 시집입니다.”

그에게 주고 싶은 말들은 모두 시 속에 있었기 때문에, 신우혁은 시집 밖에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 선생은 조금 의아한 듯 했으나 새로운 읽을거리를 마다하지는 않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저고리를 다시 함 속에 고이 개켜놓고 나서야  책을 받아들며 감사하단 말을 했다.

“하시던 일을 방해한 듯 해 죄송합니다. 그것은…”

웃는 낯으로 대화를 트려던 신우혁이 저도 모르게 말을 멈추었다. 목함 안에 담긴 개나리색 저고리. 누구의 것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예. 내자의 옷입니다. 간만에 날이 좋기에 바람을 쏘이려 했지요.”

빛깔 고운 명주 위로 단단한 손이 놓였다. 연인의 뺨을 쓰다듬듯 그것을 매만진다.

“봄이 오거든 새 옷을 지어주겠노라 약속을 하였는데, 그 전에 가버린 탓에…. 옷을 돌보는 일이 제 몫이 되어버렸지 무업니까.”

이 선생은 고통스러운 그리움에 미소를 짓는데, 신우혁은 점차 사그라드는 웃음을 억지로 붙들어 놓아야만 했다. 이휘명이란 사람이 애틋하였다.

꽃이 태양을 사랑함을 질투함은 어리석다. 노을이 달을 그리워함을 질투함 또한 어리석다. 신우혁은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이 선생이라는 한 인간을 그러한 방식으로 이해하였다. 어떠한 사랑은 인생 전체를 바꾸어놓고 떠나간다. 이휘명은 이미 그 파도에 휩쓸고 간 잔해였다.

신우혁은 어린애도 풋내기 젊은 청년도 아니고 연애며 사랑놀음이 무형의 자산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짐을 모르는 남자 또한 아니었다. 마음을 내주어도 돌려받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그는 안다.

그러나. 손바닥 아래에 노란 명주 저고리를 품은 무채색의 남자는, 엷은 미소를 띤 채 신우혁을 올려다보는 이휘명이라는 한 인간은….

눈이 쌓여 희고 또 고요한 초가집의 안마당에 서서, 신우혁은 이휘명이 자신을 파괴할 사랑으로 다가올까에 대해 내심 점쳐 본다. 이미 자신의 마음은 기울기 시작하였고 도망칠 방법이 없는 것을 직감하면서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 中